김홍신소설가 -국회에서 초원으로 돌아온 장종찬
인터뷰어 : 윤향기시인
"세상이 주는 고통만큼 우리는 강한 생명력을 얻습니다" 『인생사용설명서』에서 존귀한 이들에게 깨달음의 메시지를 던진 지 1년 만에 『그게 뭐 어쨌다고』에서 "젊은이는 자기 마음에 불을 피워야 합니다. 불꽃을 일으키는 가장 좋은 수단은 자기 육신과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달랑 하나뿐인 우리의 영혼은 존귀합니다. 지구를 위감아 돌 수 있고 우주를 넘나들며 천하를 주유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 자체가 명품이 되려면 자신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남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닳도록 사용하라"고 말한다.
화창한 오후 2시, 김홍신 작가를 서초동 자택에서 만났다.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2층 서재는 도심 같지 않게 조용하고 솟대가 놓여 있는 책상은 우직하기만 하다.
윤향기: 선생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지금도 컴퓨터 대신 손으로 쓰시는 것을 고집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김홍신: 이어령 선생님이…… 손으로만 쓰신다고, 날아가는 상상, 나비나 벌처럼 날을 때 그걸 딱 잡을 수 있는 건 컴퓨터가 아닌 만년필이다. 80년대 인호형과 우리는 죽는 날까지 손으로 쓰자고 약속하고 서로 배반하지 않은 최형이 먼저 영면에 드셨지요. 『대발해』를 쓰는 3년 동안은 정말 커튼으로 햇빛과 소음을 차단하고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써내려갔습니다. 당연히 만년필이지요. 그래서 집필을 끝내고 마당에 나가 오랜만에 햇볕을 쪼였더니 없던 알레르기가 나타나 한동안 고생했답니다.
윤향기: 그렇다면 『대발해』(2010) 10권을 집필하시는 사이에 『인생사용설명서』(2009)가 탄생한 것 아닙니까? 정말 손과 팔이 마비되는 시점에 또 다른 텍스트를 구상하고 곧바로 집필하여 책으로 출간하는 그런 힘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에너지일까요?
김홍신: 글쎄요. 일종의 유령진동 증후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항상 생각하지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한적한 절간 같은 데서 푹 쉬고 오리라. 하지만 이상하게도 끝마친 그 순간부터 새로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하는 저를 봅니다. 저에게 쓰는 일이야말로 삶의 창조이며, 쉼이며, 휴식이며, 치유인 듯 싶습니다.
윤향기: 그럼 지금 이 저택에 거주하는 분은 누구누구입니까?
김홍신: 풀꽃을 사랑하던 아내는 워낙 나서는 것을 싫어해서 의원 부인들의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병을 얻어 2004년도에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 버리고, 그 후에 아들은 결혼하여 분가하고, 딸은 미국에 있으니, 사실 저혼자 기거하는 것이지요.
윤향기: 아, 사람 대신 활자와 동거하시는 선생님. 선생님의 카페에서 <해누리 삶을 생각케 해준 딸아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따님 이름이 예슬이었죠? 아마~
김홍신: 맞습니다. 토굴에 선방 차려놓고 정진만 하는 스님이 어쩌다 서울 나들이를 하면 우리 집에서 잠자리를 펴곤 했습니다. 스님이 오시면 생선 한 마리 올리기가 괜히 죄스러워 식탁을 채마밭 꾸미듯 할 수밖에 없었지요. 요즘이사 아이들 핑계 대며 고기점이라도 올려놓지만 스님은 당신 탓에 아이들 먹성을 막을까 하여 식단을 가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한 번도 젓다락 가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날도 스님과 우리 식구는 밥상머리에 앉았습니다. 스님은 오른손 네 손가락을 촛불에 태워서 엄지손가락밖에 없음에도 수저질은 물론이요, 글씨체가 곧고 필력 또한 좋았습니다. 어려서 산사에 입적한 스님은 연비의식을 치르며 오른손 네 손가락을 영원히 수행 정진의 징표로 불살라 없앤 것이지요. 담뱃불만 살짝 떨어뜨려도 덴 자국 때문에 괴로워하는 범속한 내 인내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경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식탁에서, 여섯 살 딸아이가
"신님! 신님! 손가락 어디다가 두고 왔어?"
"손가락이 무거워서 두고 왔단다."
"왼손은 우리 예슬이가 밥 잘 먹고 말 잘 들으면 이렇게 쓰다듬어 주려고 가져왔고……. 오른손은 우리 예슬이가 말 안 듣고 밥 투정하면 요렇게 때려주려고 손가락을 떼어두고 왔지."
윤향기: 1975년 등단 이후 37년간 130여 권의 작품집을 출간하셨는데 선생님 소설의 변천사는 어떻게 나눈 수 있을런지요? 그리고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주제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홍신: 음~ 다시 또 생각해도 제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역시 '휴머니즘'이 아닌가 합니다. 힘없는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이 참혹한 일상을 드러내고 더는 빼앗길 것이 없는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없을까? 가 저의 화두였던 셈이지요. 그 밑바닥에는 충남 공주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교육환경이 한몫 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외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에 앞서 혹독한 교육을 시켰지요. 집안 청소는 항상 어린 저의 몫이었고, 냄새나는 변소청소를 하게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혹시 어머니가 계모가 아닐까 하는 못된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동네의 곱추를 놀였다고 호되게 맞은 적이 있습니다. 배운 것 없는 어머니였지만, 제게 딱 두가지를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하나는 거짓말하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용서 없이 회초리를 들었고, 둘째는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 굴복하지 않는 정신이었습니다. 이런 어머님의 정신이 고스란히 제 작품세계에 스며든 건 당연하겠지요.
윤향기: 아,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가장 영향을 미친 작가는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홍신: 그리고 저는 운 좋게도 어렸을 때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성베드로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에게서 외국만화인 『댕댕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기억하는 책에 빠진 첫 번째 계기였습니다. 그 만화책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그 시리즈를 사기 위해 설날만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지요. 세뱃돈을 받으면 받는 즉시 책방으로 달려가 몽땅 만화책을 사는게 투자하곤 했지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불호령도 여러 번 받았지만 만화책을 읽은 즐거움에 비하면 어머님의 불호령 따위는 참을 만했습니다.
윤향기: 통합님주당 제15대 한나라당 제16대 국회의원을 하시는 동안 내내 의정활동 전체 1등, 2004 폴컴선정 정치인으로 뽑히셨다지요? 그 와중에 '재봉틀'이란 현실발언을 하셔서 수모를 당하셨다는데, 작품 속에서 현실발언을 하셔서 수모를 겪으신 적은 없으신지요?
김홍신: 90년 초엽, KBS 생방송 도중에 노태우 대통령과 정권을 비민주적인 정권이라고 비판하다가 출연정지당했고, 95년도 역시 KBS아침 생방송 "안녕하세요, 김홍신 김수미입니다" 진행 중 김영삼 정권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죄고 방송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문민정부 제1호 필화사건이었죠./ 『인간시장』역시 살벌한 시절에 썼습니다. 계엄사에 잡혀갔을 때 다들 총을 차고 있는 것을 보고 주인공 이름을 권총찬으로 써나갔다. 권총찬은 신문 연재 검열 때마다 걸렸고 당시 주간 한국 편집국장이 제발 같이 살자고 하소연을 해서 성남 '권'에서 '장'으로 바꿨지요. 온갖 협박과 공갈, 무차별 공격, 거물급의 실명까지 거론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윤향기: 요즘 우리들의 정신적 멘토로 활동 중이신 법륜스님과도 좋은 유대를 갖고 계시다지요? 꿈을 찾아 바상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정찰이 담신 한 마디를 남겨주신다면?
김홍신: 사람에게는 실패할 특권이 있어요. 그리고 용서받을 특권도 있어요. 근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책임도 꼭 있어요. 단 한 번뿐인 인생, 근사하게, 잘 놀다 가지 못하면 불법이에요. 지금 이 지옥을 통과해야 해요. 지옥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장소예요. 무엇보다 열등감을 벗어 던지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 말고 자기만의 개성에 자부심을 갖고 통과하는 거예요.
윤향기: 그렇습니다. 인간은 가장 힘들 때 자신의 본질에 가장 가까워진다고 하지요. 긴 시간 동안 대단히 고마웠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힐링 받을 수 있는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늘 충만하시고 또 행복하시길 빕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유언은?
"인생, 근사하게 살지 않으면 불법이죠."_ 김홍신
맞습니다. 잘 놀다 가지 않으면 불법이죠. 행복은 의무니까요.
푸~하!하!하!
평생 교수자리도 마다하고 고등학교에서 가르친 프랑스 작가 알랭은 늘 칠판에다 '행복은 의무다'라고 썼다지요.
그래요. 행복한 사람은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한 사람은 불행하게 만든다지요.
"그의 첫 모습은 왜소합니다. 한국인이 평균 신장보다 10㎝ 정도 작은 그이기에 처음 대할 때는 여유 있게 자신감을 가지고 접근하지만, 가까이서 대하는 그 사람은 육 척 장신의 거인을 능가하는 풍모를 지니고 있어 자신이 왜소해짐을 느낍니다." 라는 최인호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밤의 발레>를 공연하고 있는 루이 14세가 떠올랐다. 정말이다. 온화하지만 단호한 느낌이 드는 만개한 힐링 심벌마크. 대담 내내 환한 미소로 답해주시고 봄이 오고 있는 앞마당의 돌층계를 지나 대문까지 나오셔서 배웅해주신다. 거실에는 이미 다른 손님이 와 기다린다. 예약대담시간이 무려 30분이나 지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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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마음을 훔친 도둑, 인터뷰『아모르 파티』2016.10.20 <도서출판 등대지기>펴냄
* 윤향기/ 시인, 문학박사, 시집『그리움을 끌고 가는 수레』『피어라 플라멘코!』등, 수필집『로시난테의 오막살이』『나는 타인이다』등, 평론집『에로티시즘 시 심리학에 말 걸다』『연애편지 점성술』등,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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