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의 상실과 존재의 위기 증언하다
-인간의 야만 투시한 오스트리아 시인 파울 첼란
김지희 / 시인
본명이 파울 안첼(Paul Antschel)인 파울 첼란은 1920년에 태어나서 1970년 4월 말 세느강에 투신 자살함으로써 50세에 비애悲哀의 생을 마친 시인이다. 유태인 신분을 감추기 위해 본명 철자를 바꾸어(Ancel을 철자만 바꾸어서 Celan으로 함) 1947년 5월 루마니아의 잡지 《아고라Agora》에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파울 첼란으로 통하게 된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옛 영지였다가 1918년부터 루마니아에 속하게 된 작은 도시 부코비나의 체르노비츠에서 태어난 시인은 초등하교 시절 비교적 얌전하고 말이 없는 학생으로 특별하게 우수한 편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고향은 한때 오스트리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당시 교양 있는 집안에서 사용한 독일어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파울 첼란은 집에서는 독일어를 학교에서는 루마니아어를 사용하며 자랐다. 그 외의 언어로 프랑스어, 히브리어, 영어, 러시아어, 포르투갈어, 이태리어 등 여러 언어를 익였으며, 아버지는 유대 교육을 중요시했지만 독일어를 중요시한 어머니는 첼란이 정확한 표준 독일어를 쓰도록 교육시켰다. 체르노비츠에서 김나지움을 마친 첼란은 프랑스의 뚜르에서 의학을 전공한다. 하지만 한 학기 후인 1939년 여름 고향에서 방학을 보내던 첼란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프랑스로 돌아가지 못하고 체르노비츠에 머물면서 그곳 대학에서 로만스 어문학을 배우게 된다.
상처투성이 속에 서 있는 시인
1939년은 영국, 프랑스, 독일, 소련 간의 주도권 싸움과 나치의 반유대주의가 싹트던 시기였다. 첼란은 부로비나의 체르노비츠에서 출생했지만 1940년 그곳이 소련의 영토로 합병되면서 사실 그가 오스트리아에서 기거한 기간은 1년이 안 된다. 나머지 일생을 파리에 머물러 있었다. 파리에 머물면서도 그는 독일어로 시 쓰는 것을 고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유랑자로서 그가 마음속에 간직한 유일한 뿌리는 언어, 독일어일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하며 수용소에서 죽음에의 체험을 절감하면서 인간 본성의 상실 위기를 증언하는 시를 쓰지만 상처투성이의 기억 속에 그의 독일어와 독일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은 마침내 정신분열적 성향의 실마리로 이어지게 된다. 1941년 7월 독일과 루마니아 군대가 체르노비츠를 점령하게 되어 유태인 거주 지역 게토(Ghetto)가 되었다. 이때부터 체르노비츠 유태인 박해는 시작되고, 시인 첼란의 생애도 수난과 고통으로 얼룩지게 된다. 그의 삶, 유태인으로서의 비애는 안식 없이 수난과 고통으로 '서 있음'의 생인 것이다.
공중의 상흔傷痕
그림자 속에 서 있음.
그 누구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서 있음.
알려지지 않게,
너만을 위해.
그 안에 공간이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언어도
없이.
-「서 있음」전문
시 쓰기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말 걸기
파울 첼란은 인간 본성의 상실과 존재 위기를 증언하며 죽음이라는 모티브를 갖고 죽음의 미학을 써 내려간 시인이다. 그런 그의 시는 묘하게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힘이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적이다'라는 아도르노의 명제는 역설적으로 그 이후 많은 시들을 탄생시켰는데 그 시들은 오히려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시를 쓰는 일을 '투병통신'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바라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거는 것이라 말한 파울 첼란의 투병통신은 흘러흘러 먼 아시아로, 그것도 한반도 안쪽에 있는 필자에게까지 와 닿아 말을 걸고 있다.
파울 첼란은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 죽임을 당했고 자신은 강제 노동형에 처해 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난다. 시대적 고통이며 자신의 아픔인 유태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대량 학살을 당하던 수용소에서의 현장 체험과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한 부모의 경험, 그 고통들을 시로써 표현한다. 수많은 독일 시인들 중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가장 적절한 시유와 언어로 잘 표현했다고 평가받은 그는 '도달할 수 있게, 가까이에, 잃지 않고 이 상실 가운데에서 이것 하나만 남아 있었습니다. 언어였지요. 언어, 그것만이 잃어지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정말 무엇보다도요. (…) 나는 그래 이 언어로 (…) 시를 쓰고자 시도했습니다. 말하기 위해,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내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밀려가는지 탐색하기 위해서'라고 고백한다.
모국어 외에는 어떤 언어로도 시를 쓰지 않겠다고 해, '적敵의 언어인 독일어로 시를 쓴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파울 첼란은 부코비나(Bukowina)의 수도 체르노비츠 (Czernowitz)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독일어로 시를 쓰는 것을 지나치게 고집한다. 그러나 그는 오스트리아의 문학사전에도 실려 있는 오스트리아 시인이다. 친나치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철학자 하이데거의 면회 신청도 거절했던 첼란은 그 당시 독자 없는 시인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그는 저명한 독일 시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음과 동시에 커다란 명성도 함께 하고 있다.
그의 시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이나 독일 표현주의 시인 트라클처럼 난해하고 어둡다. 그의 시는 유태인으로 겪은 시인의 개인적 과거를 배경으로 어두움과 비의적인 기법으로 폐쇄적이고 수수께끼 같으면서 마술적인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절대적 은유 기법을 많이 구사한다. 어둡고 암울한 자신의 존재 위기 한가운데를 조심스럽게 더듬어가며 내면의 절박함과 자신의 위치를 소명하려고 한 시인의 시.
말의 저녁- 정적 속에서 마술지팡이로 광맥을 찾는 사람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세 걸음, 그 자취를
그대의 그림자는 지우지 않는다.
시대의 상처자국이
열리고
대지를 피에 잠기게 한다-
말의 밤의 사냥개들, 그 맹견들은
이제
그대 한가운데서 짖는다 :
그들은 더욱 심한 갈증을 찬미한다,
더욱 심한 굶주림을…
-「말의 저녁」전문
시인은 '정적 속에서 광맥을 찾는 사람처럼' 어둠 속을 조심스럽게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내딛는다. 어둠과 정적 속에서 피 흘리고 있는 상처와 피에 잠긴 대지, 그대 한가운데서 짖는' 밤의 사냥개들은 공포감과 절박한 현실을 외치고 있다. 이런 시대를 경험한 시인의 상처 자국은 이제껏 겪었던 어떤 것보다도 상상 이상의 특수한 인간 파괴의 경험을 겪었을 것이다.
시는 만남의 비밀이며, 사물의 내부 들여다보기
그의 문학에 영향을 끼친 작가로는 릴케와 트라클, 카프카, 폰타네, 토마스 만 등이 있으며 그의 관심 대상은 횔덜린, 장 파울 등이었다. 그리고 랭보, 베를렌느, 롤랑 등의 작품을 애독하였다고 한다. 1952년 여류 그래픽 디자이너 지젤 드 레트랑즈와 결혼했으며 '47그룸' 모임에서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등 활발한 작가 생활을 하게 된다. 이 무렵 나온 『양귀비의 기억』에 실린 유명한 시 「죽음의 푸가」로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1960년대 말까지 난해하고 암호 같은 그의 시는 독자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1955년에 나온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가 평론가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해 1957년 '독일 산업연방협회' 문화부의 명예표창을 받으면서 계속해서 문학상 수상의 행운을 얻게 된다. 1958년 자유한자 도시 브레멘 문학상, 1969년 독일 문학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다름슈타트 학술원의 뷔히너 상을 받았다. 이 시상식에서 첼란의 수상 연설은 시인의 시론적 견해를 표명한 희귀한 논문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후에 『자오선권子午線圈』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그의 시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
1959년 『언어의 창살』이 발표되고 파리의 고등사범학교 강사 자리도 얻게 된다. 1964년에는 그의 생애 마지막 상賞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예술대상을 받았던 그를 바인리히가 평한 것처럼 '그 인물이나 작품 면에서 볼 때 한 세기의 유럽 서정시를 총괄할 수 있는' 위대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뷔히너 상의 수상 연설에서 '상대가 없는 시는 생각할 수도 없으며', '시는 만남의 비밀'이고 어떤 사물의 내부에다가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듯이 첼란의 시는 '나'와 '너'의 양극성으로 이해되고 '너'라는 것은 '나' 속에 존재하는 절대적 대상이 된다. 첼란이 시를 쓰는 것은 자신을 대화의 상대로 삼아 말하는 자기 해석이며 자기 위치에 대한 소명이며 자기 존재의 확인이라 할 수 있다. 첼란은 1958년 브레멘(Bremen)에서 연설을 통해 자신이 시를 쓰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말한다.
"대화하기 위하여, 나를 이해하기 위하여, 내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알기 위하여, 나의 현실을 정립하기 위하여"
"시는 시대를 초월할 수 없습니다. 시는 영원성에 대한 요구를 하며, 시는 시간 속을 통과하며 포착하려 합니다. - 시간 속을 지나는 것이지, 시간을 뛰어넘는 것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시가 내면의 대화이며 주관적 창작의 산물이므로 시작의 과정이 시인의 현실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게 시인은 시가 현실을 추구해야 하며 현실을 떠나거나 자기가 처한 역사성을 떠난 다른 세계의 표현이 아니라고 언급하고 있다.
거울 속에 일요일이 있고,
꿈속에서 잠을 자며
입은 진실을 이야기한다.
내 눈은 연인의 성性을 내려다본다.
우리는 서로 쳐다본다.
우리는 스스로 어두움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양귀비와 기억처럼 서로 사랑한다.
우리는 조개 속의 포도주처럼 잠을 잔다.
달이 내뿜는 피 속의 바다처럼 잠을 잔다.
-「코로나」부분
유태인의 일요일은 실망을 느끼는 날이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안식일인 토요일에 오지 않아 '거울 속에 일요일'이 있다고 실망을 하며 핏발선 달빛 속에서 바다처럼 잔다고 하지만 '꿈속에서 잠을 자며' 잠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 아니고 꿈 속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니 이런 꿈의 상태는 참된 통찰과 연관되며 또 '내 눈은 여인의 성性을 내려다본다'라는 것은 두 애인의 에로틱한 경험을 암시한다는 것으로 생각할 때 반유태적 기독교 사회상과 갈등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다음 시는 죽음과 같은 현실의 상태를 역설적인 표현으로 마치 연애시같이 써내려 간 묘한 시이다.
그대, 나와 더불어 생각해 보오. 파리의 하늘, 그 위대한 가을의 무시간성…
우리는 꽃 파는 소녀들에게서 마음을 샀지요:
가슴은 파랗고 물속에서 피어오르고 있었지요.
우리 방에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었고,
우리 이웃의 깡마른 꼬마 아저씨 '꿈' 씨가 찾아 왔지요.
우린 카드놀이를 했고, 나는 눈동자를 잃었었지.
그대는 나에게 머리칼을 꿔주었고, 나는 그것을 잃어버렸고, 그는 우리를
이겼지요.
그가 문밖으로 갔을 때, 빗방울이 그의 뒤로 떨어졌지요.
우리는 죽었는데 숨은 쉴 수 있었지요.
-「프랑스 추억」전문
파리의 하늘에서 꽃 파는 소녀들에게서 마음을 사고 마음은 물 속에서 피어오르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동안 꿈 씨와 카드놀이를 하고 마지막 행에서 '우리는 죽었는데 숨을 쉴 수 있었지요'에서 죽었는데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니 이러한 역논리는 '죽음의 푸가'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실낱 같은 태양을 붙잡고 띄우는 시
유태인으로서 고향 없이 방황하며 정신적으로 유랑자였던 시인은 죽음과 기억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를 푸가 형식에 따라 두 개의 주된 가락으로 유태인과 억압하는 독일인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푸가(fuga)는 라틴어 'fuge'에서 온 말로 '도주'라는 뜻이다. 한 가락에서 다른 가락으로 달아나듯 음이 조정되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나의 주제를 조 바꿈하여 변조시키면서 생겨나는 대위법상의 변화다. 주제와 반주제를 곡에서 주를 이루게 해서, 주를 이루는 두 개의 가락은 각기 그에 상응하는 답구答句를 가진다. 「죽음의 푸가」도 지면상 중략했지만 매 연마다 반복되는 반복구어로 되어 있다. 그 반복구어는 주술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다음의 시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가 가능한가?'라는 아도르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의미로 씌어진 시 「죽음의 푸가」이다.
태고의 검은 우유 우리는 그것을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낮이나 아침이나 그것을 마신다 밤에도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우리는 허공에 무덤 하나를 판다 그곳에서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한 남자가 집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과 더불어 논다 그는 편지를 쓴다
그는 날이 어두워지면 독일로 편지를 쓴다 너의 금빛 머리털 마르가레테
그는 그렇게 쓰고 그리고 집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별들은 빛나고 그는 사
냥개들을 휘파람으로 불러 모은다
그는 자기의 유태인들을 휘파람으로 불러낸다 땅 속에 무덤을 파게 한다
그는 우리에게 명령한다 무도곡을 연주하라
(중략)
그대 재의 머릿결 술라미트 우리는 허공에 무덤을 판다.
그곳엔 비좁지 않게 눕는다
(중략)
그는 고함을 지른다. 더 음울하게 바이올린을 켜라 그러면 너희는 연기처럼
공중으로 올라간다
그러면 너희는 구름 속에 무덤 하나를 갖게 된다 그곳에선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태고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신다
우리는 너를 정오에 마신다 죽음음 독일에서 온 거장
우리는 너를 저녁과 아침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그의 눈은 푸르다
그는 납총탄으로 너를 맞춘다 그는 너를 정확히 맞춘다
(중략)
너의 금빛 머리털 마르가레테
너의 잿빛 머리털 술라미트
-「죽음의 푸가」부분
이 시는 어느 특정한 상황 속에서의 죽음을, 즉 유태인들의 수난과 죽음의 수용성에서의 집단학살을 '검은 우유', '허공에 무덤', 무도곡이란 표현을 쓴 시다. 매우 참혹한 죽음을 테마로 삼은 작품이지만 독자들은 묘한 역설에 지배당해 아름답고 추상적이며 미적인 세계로 빠져들게 괸다. 난해한 시어인 '태고의 검은 우유'라는 수수께끼 같은 초현실주의의 은유에 대해 야콥슨은 '이 모순 형용법을 완전히 해명하려는 생각은 금물'이라고까지 말한다. 캐스트너는 '수수께끼의 말, 핵심의 말은 그 비밀을 위해서는 해체해서는 안 되고, 해명 없이 귓전에 스쳐가게 하는 것도 금물이며 자물통이 있으면 열쇠가, 수수께끼면 방책이 있는 법'이라고 첼란 시에 대한 신중한 암호 풀이의 태도를 권장한다.
첼란의 시는 어둡고 음울하다. 또한 암호 같은 시어를 통해 절실하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시의 배경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찾아보면서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삶과 죽음의 주제를 다룬 것이라 생각하면 그의 작품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유태인들로 구성된 자체 내의 오케스트라를 거느린 죽음의 수용소가 존재했던 것을 우리는 기사를 통해 알고 있다. 끔찍한 역사적 사실인 유태인 대학살의 현장을 첼란은 반어법을 사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깊은 내면으로 회전해 들어가게 한다.
'그'와 '우리'는 죽임과 죽음을 당함이라는 능동과 수동의 적대 관계에 있다. '그는 사냥개들'을 불러내고 이어서 '그의 유태인들을' 불러낸다. 사냥개만도 못한 우리(유태인들)는 '그'에게 종속된 수난과 고통의 삶은 개만도 못한 죽음을 의미한다. 이런 냉혹한 현실이지만 '그'와 '우리'는 다만 배역을 서로 충실하게 할 뿐, '무덤을 파게 하고' '무덤을 판다'는 다만 주어진 것에 대한 행위만 연출될 뿐 비탄하지 않고 갈등고 반항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연기 되어 허공으로 올라가서 비좁지 않게 누울 자리를 상상하며 무덤을 판다. 그 후에 올 죽음을 생의 소멸이라 행각하지 않기에 죽음의 현실을 비탄하지 않고 죽음은 최고의 자기 실현이며 오히려 승천의 뒷날을 생각하며 담담하게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이다. 죽음은 인류에게 시공간을 초월한 유일한 공통 분모이고 영원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독일 전래의 여성상인 금발의 마르가레테'와 성경의 아가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신부 '술라미트'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두 민족의 운명을 비교하면서, 역설적으로, 죽었고 죽을 우리에게는 검은 우유가 죽음을 의미하지 않고, 죽어간 재만 남은 여인이 죽은 것이 아니다. '태고의 검은 우유'를 마심으로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유태인이지만 마지막까지 기도문처럼 중얼거리는 것은 영원한 신부 솔론 시절 찬란했던 유태민족의 사랑이며 예루살렘인 '술라미트'인 것이다. 이미 재가 되어 버린 어미칼은 존재할 수 없지만 여기서 무덤을 파면서 유태인들이 '술라미트'을 부르는 것은 영원한 신부를 통한 구원의 갈망이며 피할 수 없이 무의미한 죽음이 극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인 것이다.
역사적인 암울은 세계를 무의미하게 하지만 시인은 그 세계에 대해 가치있는 관계를 구하는바 자신이 놓인 고뇌의 역사적 배경과의 관계 속에서 상실한 인간 본성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시를 써내려 가면서 자신의 현실을 정립하려 했으며 좀 더 진실되고 근원적인 것, 영원한 것에 대해 갈망한다. 바로 눈앞의 죽음에 아무런 해결책을 가지지 못하는 인간에게서가 아닌 영원한 구원의 갈망 속에서 유태인들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교훈처럼 결국 구원은 신神에게서 가능하다는 암시를 시인은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시는 프리드리히 쉴레겔이 정의한 낭만주의 문학으로서의 본질과 유사하게 무한한 것에로의 끝없는 접근으로, 비의적이며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첼란의 시는 독자들에게 인식에 이르는 분석을 요구하며 독자를 독서의 대상으로 확대시킬 것을 독자로부터 요구받고 있다. 영원한 패러독스로 남을지도 모를 그의 시는 도달할 수 없는 초월적 유토피아에 대한 메시아적 희망을 품고, 자신의 삶이 고뇌와 비애의 역사이지만 '인간들의 피안에는 아직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투병 통신하며 띄우는 것이 아닐까?
흑회색 황야 위에
실낱 태양
나무만큼 높은
상념 하나
빛의 음을 붙잡는다.
인간들의 피안에는
아직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실낱 태양」전문
'시는 정말 언어의 형태이며 그러므로 그 본질상 대화적이기 때문에, 그 어디엔가 그 언젠가는 물에, 아마도 마음의 나라에 스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물론 항시 희망에 가득 찬 것은 아니나 띄워 보내는 병 속의 편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 파울 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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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문화 에세이|세계의 문제 시인을 찾아
『사랑과 자유의 시혼』 김지희 지음/ 2017. 3. 25. <도서출판 시와문화> 펴냄
* 김지희/ 경북 성주 출생, 2006년『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2014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토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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