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추사 적거지에 가다/ 진원종

검지 정숙자 2017. 7. 21. 15:55

 

 

    추사 적거지에 가다

 

    진원종

 

 

  여름휴가를 가족들과 제주도로 다녀왔다. 사부인을 위시하여 아내와 아들 · 며느리, 11개월짜리 손자 주원이, 그리고 딸과 사위, 초 · 중 · 고등학생인 외손들까지 대가족이었다. 태풍이 타이완에서 오키나와 쪽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기상예보가 있었지만 예정대로 가기로 했다.

  숙소는 S교회의 휴양관인데 제주시 애월읍의 바닷가에서 반 마장 정도 떨어진 숲속의 그림 같은 하얀 2층 집이었고 앞 · 뒷마당의 노송들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발토니에서 바라본 전망은 푸른 소나무숲이 울창한 구릉지와 녹색의 펀더기*가 펼쳐져 있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마을에서 약간 떨어져 있고 다른 객들도 보이지 않아 적요한 분위기는 요요蓼蓼할 정도였다. 여장을 풀고 바닷가로 나가 전망 좋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니 어느덧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해변을 잠시 산책한 우 숙소로 돌아왔다. 초등 5학년인 영준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와서 너무 좋다고 했고, 주원이의 재롱은 온 가족에게 웃음과 엔도르핀을 선사해주었다. 나는 가지고 간 『완당평전』을 읽으며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은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적거지謫居地로 향했다. 추사는 대정읍 안성리에서 9년 동안이나 위리 안치된 유배생활을 했다. 이 집 앞에는 1984년부터 있던 기념관이 낡아 2010년에 신축 개관했다는 지상 1층, 지하 2층 규모의 추사관이 세워져 있었다. 송효상 건축가가 추사의 정신과 자연에 맞게 설계했다고 한다.

  추사는 영조의 사위였던 김한신의 증손으로 북학파인 박제가의 학문을 전수받았고, 245세 때 생원시에 장원급제한다. 그후 호조참판인 부친 김노역이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 함께 연경에 들어가 청나라의 석학인 옹방강, 완원 등과 교유함으로써 금석학고증학을 연구한다. 34세에 대과에 급제한 추사는 38세에 규장각 대교待敎, 성균관 대사성, 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그러다가 55세 동지부사로 연경행을 코앞에 두고 당쟁에 연루되어 유배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추사는 유배생활을 헛되게 보내지는 않았다. 제자인 소치 허련과 벗 초의선사가 내왕하며 수개월간 함께 지냈고, 수많은 독서를 통하여 학문과 예술의 세계를 궁구했던 것이다. 책들은 예산 본가에서도 가져왔지만, 제자인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迪이 연경에서 들여온 책이 많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상적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그려준 세한도寒圖가 탄생하게 된다. 추사는 제자에 대한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지난해에도 『만학(만학)』등 두 문집을 보내주더니 올해에도 우경의 『문편(문편)』120권 79책을 보내왔도다. 이는 천만리 먼 곳으로부터 사와야 하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다. 더구나 어렵게 구한 책들을 권세가에게 주지 않고 바다 멀리에 있는 초라한 나에게 보내주었다. 날이 추워져 다른 나무들이 시든 다음에야 비로소 소나무가 여전히 푸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아! 쓸쓸한 마음이여! 완당노인이 쓰다'

 

  라는 발문이다. 이에 이상적은 중국의 석학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고 16명으로부터 제와 찬, 또 시와 문을 받아 세한도에 합장合裝하게 되니 이것이 <청유 16가(淸儒十六家)의 제찬>이다.

  왕실의 의척으로 부러울 것이 없던 추사는 유배생활의 외로움을 이겨내고 자기만의 고유한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券가 녹아있는 독특한 서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고산(尹善道)이나 다산(丁若鏞)도 긴 유배생활을 겪으며 명작을 탄생시킨 게 아니던가. 추사는 71세에 봉은사 경판각의 편액 '판전板殿'을 쓰고 그 해에 생을 마친다. 조선 후기 서화가인 유최진은 '글씨의 묘를 참으로 깨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법이다'라고 했는데 그 깊은 뜻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후에는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갔다. 태풍은 일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데 바람은 강했지만 수정같이 맑은 청옥색 바닷물은 따뜻했다. 다음 날은 다행히 날씨가 화창했다. 남해의 햇빛은 강렬했고 바다는 코발트블루의 환상적인 색채를 띠우며 평화로웠다. 대가족이 제주도까지 처음 다녀온 이번 여행은 2박 3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한 소중한 시간이었고, 아이들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랫동안 간직할 것이다. 여름은 그 막바지를 한창 치닫고 있었다. ▩

 

   * 유홍준완당평전』(학고재, 2002년) 참조

   * 블로그주/ 펀더기 : 넓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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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문학』277호(2017-2월) <散文>에서

  * 진원종/ 전주시 완산구 강변로 98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