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의 블랙홀
윤연옥/ 수필가
왼쪽 귀가 답답하여 진료를 받았다. 물약을 주며 세 시간에 한 번씩 귓속에 넣으라는 처방이다. 다음날 다시 진료를 받으며 귓속에서 1.5센티 족히 되는 원기둥의 피고름 귀지를 뽑아내자 대기하던 환자들이 모두 놀라워한다.
그 후로부터 왼편 귀에 울림이 있으니 말로만 듣던 이명이다. 어쩌면 내 몸 안의 상태를 소리로 전달하는 다른 호소이지 싶기도 하다. 이명은 계속 나를 붙들고 통사정하는지라 종합병원에서 재검사를 했으나 이상 없다는 처방만 돌아온다. 울림은 멈추지 않는데 괜찮다니 괴이한 현상이다. 그 상태로 오래도록 내버려 두자 울림의 강도가 심해져 귀는 이십사 시간 쉬지 않고 울어댄다.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정말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까 싶어 더럭 겁이 난다. 여러 검사를 했으나 역시 대답은 같다. 삼일 동안 복용할 약을 받아 들고 애먼 의사만 폄훼하며 돌아온다.
후미진 귓속을 위로함인가, 마치 친정집 뒤뜰에 서 있는 듯 '돌돌돌돌' 풀벌레 소리가 들리거나 '사부작사부작'치맛자락을 끌고 가는 파도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내 안의 소리조차 관리 못하면서 밖의 울림을 해결하겠다고 누군가를 상담하던 일들은 오지랖 넓은 처사이겠다. 허나, 안에서의 두드림은 내 안팎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듣기만 하고 몇 마디 단어로 말할 줄 모르는 나를 향한 호소임을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미련함이다.
사전적 의미로 울림은 '일정한 공간 속에서 음이 발생할 때 나타나는 음파의 중첩현상'이라고 풀이한다. 그래 맞다. 그 정해진 공간 속에 담아 두었던 많은 소리들이 살아가기에는 터무니없이 비좁았을 터이다.
쉽게 보이는 상처가 아니므로 애절하게 호소하며 스스로 치유해야 하는 혼자만의 울음으로 할 말이 있다고, 미로 같은 지하방의 문을 부서져라 두드린 지가 어느덧 수년이다.
서서히 내 귀에 변화가 오고 있다. 때로는 풍경소리가 들리던 그 뒤꼍 동네가 고요하기에 내심 좋아하면서도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다. 복용한 약 효과가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마음이 먼저 달라진 데서 오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귀 안에는 팔꿈치보다 작은 것은 들여 놓지 말라던 누군가의 당부를 귓등으로 흘려들은 것이다. 귀는 액세서리가 아니거늘 소중한 몸을 함부로 다뤘으니 재빠르게 못 알아차린 대가이다. 주인이 미련하여 소리를 포기할까봐 불편한 옹알이로 수없이 알려주었다.
속히 치료해달라고 혀 아닌 귀로 말하려니 오죽 답답했을까 싶다. 햇볕이 부족해도, 듣는 귀가 닫혀 있어도, 열이 삼십 구도까지 올라가도 말 못하던 그 절절한 소리를 이제야 헤아린다. 고속도로처럼 곧은 길이 아니고 달팽이관에, 깊은 산중이라도 되는 듯 은자처럼 숨어서 듣기는 해도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귀다. 좋은 말은 깊숙이 묻어두고 안 좋은 말은 흘려버렸을 터이다. 사랑이나 비켜가야 할 인연도 그러하겠다.
그간 살아오면서 겉치레에만 연연했다. 혹여, 좋은 옷과 비싼 장신구나 값나가는 화장품에는 투자를 하면서 정작 우대해야 할 귀에 홀대했다면 분명 어리석음이다. 부랴부랴 귀에 관한 서적을 찾아 읽노라니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난날, 독서 재상이 있다면 요즘 귀 재상이 없으란 법은 없다. 귀가 머리까지 괜히 올라가 있겠는가. 귀는 머리와 가까이서 코드가 잘 맞으므로 그만큼 소중한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개떡 같이 얘기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는 시쳇말이 있다. 책임전가가 아니라 귀와 입의 협력관계를 말함이다.
나이 들면 좋은 말은 가슴에 담아두고 안 좋은 말은 듣지 말라고 귀먹어간다지. 내 어머니의 귀가 점점 어두워지듯이 때가 되면 내가 그 뒤를 이을 수도 있겠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듣지 못하거나 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소리를 완전히 잃기 전에 이명이 알려주었으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내 안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세상의 소리에 귀 담을 수는 없을 터, 늘 깨어 있으라는 충고가 아닐까 한다.
요즘 이명 외에 시끄럽게 하는 소리는 위층 소음이 사는 날의 이명이 되어 마찰을 빚기도 한다. 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아니 내게도 좀 더 인내하며 살라는 단근질로 다가온 것이다. 소음에 귀 모으기 전에 아픈 세상에 먼저 귀 기울이라는 명령 같은 울림이겠다.
어느 의사는 이명과 친구하라고 처방을 내렸지만 살다보니 그 친구는 미로에서 나의 길잡이가 되었다. 앞으로 살다가 '삶'의 한순간 이명 같은 아픔을 만나면 놀라지 말고 그 전에 미리 대비하라는 충고이리라. 더 나아가 귀 안의 소리로 성찰까지 하노라니 나의 변화를 감히 수도승의 해탈에 비할 수는 없으나 분명 이명을 빌어 소홀했던 내 안이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할일은 다시 블랙홀에 빠져들지 않게 하는 일이겠다. ▩
---------------
*『한국문학인』 2017-여름호 <수필>에서
* 윤연옥/ 1993년『창작수필』로 등단, 수필집 『내 삶의 반환점에서』『그럼 그렇게 해』등
'에세이 한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의 입구, 말의 출구/ 정영효 (0) | 2017.08.25 |
---|---|
추사 적거지에 가다/ 진원종 (0) | 2017.07.21 |
세검정 동네에서 살기 40년/ 문영호 (0) | 2017.06.28 |
두타행(頭陀行)에서 배운다/ 김광수 (0) | 2017.06.11 |
문정왕후와 보우 스님/ 이우상 (0) | 2017.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