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地圖
윤동주 (1917~1945, 28세)
順伊가 떠난다는 아츰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것
처럼 窓밖에 아득히 깔린 地圖우에 덮인다.
房안을 돌아댜 보아야 아무도 없다. 壁과 天井이 하얗다. 房안에까
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歷史처럼 훌홀이 가는것
이냐. 떠나기前에 일러둘 말이 있든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
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것이냐.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꼬 나려 덮여 따라 갈수도 없
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사이로 발자욱
을 찾아나서면 一年 열두달 하냥 내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 전문, 1941. 3. 12.
▶자선친필 시고 _ 이진경
윤동주의 유고 시집 중 "순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시는 모두 세 편(「사랑의 전당」(1938), 「소년」(1939), 그리고 「눈오는 지도(地圖)」(1941).)이다. 앞의 두 시편에서 부재한 "순이"에 대한 기억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면, 「눈오는 지도」가 "순이"가 떠나는 날 아침 내린 "함박눈"으로 인해 그녀의 발자국이 덮여 "따라갈 수도 없"게 되어버린, 남겨진 화자의 독백이 주를 이루는 시이다. 화자의 슬픔이 함박눈이 내리는 풍경과 절묘하게 중첩되어 감각적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이는 "함박눈"이 화자의 "말"도 "못할" 만큼 슬픈 "마음"과 떠나가는 사람이 남긴 "발자국"으로 만들어진 길과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를 덮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러한 이미지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함박눈"이다. 눈이 덮어버리는 세 가지 - 화자의 마음, 순이의 발자국, 창밖의 지도 중에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눈오는 지도」에 등장한 '지도'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지도가 아닌 "지도를 그린 사람의 정신세계 속에 담긴 랜드마크, 통로, 지구, 환경 등을 보여주는 심상지도(mental map)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시적화자의 "말 못할 마음"과 눈 위에 남겨진 순이의 "쪼고만 발자국"이 길이 되어 그것이 화자(혹은 시인)만의 마음의 지도로 탄생한 것이다. 이는 「눈오는 지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시에서 화자는 순이로 표상되는 타인과의 만남 즉 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모습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알랭 핑켈크로트에 의하면, 자기의식의 밑바닥에는 성찰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가 있다. 만약 순이가 없었다면 이러한 '지도'에는 이러한 '지도'는 애초에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시인이 "홀홀이" 떠나간 순이를 "잃어버린 역사"로 비유한 것은 개인적 체험을 유규한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회구성원 전체의 역사적 사건으로 확대시킨 한편 개인과 역사를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 연대성을 환기하는 것으로 이해 가능하다. 더불어 "순이"가 걸어간 길("쪼고만 발자국"이 남은 개인의 흔적)은 "함박눈"에 의해 지워져도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 하나의 세계를 가리키는 '눈오는 지도'로 재구성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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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2017-가을호 <기획연재 _ 윤동주 시인 > 에서
* 이진경/ 2017년 《문화일보》신춘문예 평론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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