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어요
한용운(1879~`1944, 65세)
바람도 없는 공중에 垂直의 波紋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
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
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골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塔 위의 고
요한 하늘을 슬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적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갓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
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
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전문-
▶무에서 유를, 순간에서 영원을(발췌) _ 김종태
이 시에 제시된 연상의 조건은 다름 아닌 '님'이다. 시인은 님이라는 연상 조건 아래서 "푸른 하늘", "향기", "적은 시내", "저녁놀"을 연상하게 된다. 즉 "푸른 하늘"은 님의 얼굴이며, "알 수 없는 향기"는 님의 입김이며, "적은 시내"는 님의 노래이며, "저녁놀"은 님의 시라는 것이 연상의 결과이다. 시인은 시행이 늘어날수록 님의 모습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마침내 시인은 나의 가슴이 님의 밤을 지키기 위해서 타는 약한 등불이라는 우주적 상상을 통하여 그토록 갈망했던 님과의 정신적 합일을 상징적으로 이루게 된다. 이 시는 연상에서 비롯된 상상력의 확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밀도 높은 수작이다. 이 시의 창작 과정은 연상이 얼마나 중요한 상상력 재고의 방법인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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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표현』2017-7월호 <기획특집 _ 사물과 상상력> 에서
* 김종태/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평론집『운명의 시학』외, 현 호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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