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선회(旋回)하는 가을/ 김경린

검지 정숙자 2017. 9. 8. 02:51

 

 

    선회旋回하는 가을

 

    김경린(1918-2005, 87세)

 

 

  저녁 노을이

  하이얀 은지銀紙

  나의 가슴에 바르고

  지나가던 날

  구름을 향하여

  한층 더 가벼워지는 지구에

  실오리 같은 가을이 쏟아져 왔다

 

  오랜

  세월을 두고

  메마른 습성이

  나의 피부에 잦아들면

  그리운 벗이여

  어린날에 두고 온

  검은 벽화의

  모습마저 잊어버려야 하는가

 

  머얼리

  나의 영토가

  바람결에 나부낄 때

  나는 부드러운 사랑의

  속삭임도 없이

  아스러운 공간 위에

  채찍처럼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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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온문학』2017-가을호 <권두시 >에서

  * 김경린/ 함경북도 경성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 토목과 졸업,  제5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 문학상 수상, 제3회 상화 시인상 수상. <신시론> <후반기> <DIAL>동인,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공저 1949), 『현대의 온도』(공저, 1957),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1985), 『서울은 야생마처럼』(1987), 『그 내일에도 당신은 서울의 불새』(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