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김치성_자선친필 시고/ 서시 : 윤동주

검지 정숙자 2017. 8. 26. 16:47

 

 

    서시

 

    윤동주 (1917~1945, 28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전문, 1941. 11. 20.

 

 

  ▶ 자선친필 시고 _ 김치성

  이 시를 해석하는 일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詩가 짧지만 간단치 않고, 익숙하지만 쉽지도 않다. 수많은 해석이 다양하게 존재하며, 평범한 순우리말 이면에 묵직한 울림도 지니고 있다. 제한된 지면에 작품이 지닌 해석의 넓이와 깊이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몇 가지를 되새긴다.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서시」는 「서시」가 아니다. 육필원고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의 구성상 맨 앞에 놓여 있고 창작연월이 적혀 있는 것을 보면 하나의 개별적 작품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가장 늦게 쓰였다(1941.11.20.)는 점, 작품에 제목이 없다는 점, 시인의 시세계를 집약하는 언어('하늘', '바람', '별', '부끄럼')가 총체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시'는 단순한 낱개의 작품이 아니라 시집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작품이 응축된 유기적 의미망을 형성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그 자체'로 인식되고 통용되어야 한다. 다만, 시인은 여기서 '序'을 '詩'로 쓴다. 序를 산문으로 쓰는 일반적 관행에 비해 흔하지 않은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보아서, 성실한 '학생' 윤동주의 면모와 시인의 남다른 안목이 확인된다. 그렇다. 사실 윤동주는 이미 시인으로서 학생으로서 "주어진 길"을 충실히 "거러"와서 하늘의 숭고한 별을 발견하고 이렇게 '별의 시학'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밤과 얼마나 짙은 어둠을 지나왔을지, '디아스포라'라는 이중 언어의 현실에서 '흐르는 거리'로 내몰리며, 고작 스물넷의 청년(靑年)이 "죽는 날"을 상상하는 절망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의 어떠한 웅얼거림을 들었을지, 곱씹으며 그의 詩를 읽는다면 더욱 환히 빛나는 윤동주의 '별'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오늘밤에도 나의 바람이 그의 별에 스치기를. ▩

 

  * 윤동주가 명동학교 졸업식 때 받은 김동환의 『국경의 밤』(1925)과 동일한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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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2017-가을호 <기획연재 _ 윤동주 시인 > 에서

  * 김치성/ 박사학위 논문 『윤동주 시 연구』, 현 한양대학교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