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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재_ 장편소설 『남쪽 바다의 전언』(발췌)

검지 정숙자 2017. 3. 7. 01:15

 

<장편소설>

 

   남쪽 바다의 전언(발췌)

 

    허문재

 

 

p.13) 이순신의 몸이 기울며 갑판 위로 쓰러졌다.

 

p.17) 옛날부터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었다.

 

p.30) 전시에 적과의 전투에서 죽는 것도 억울한 일인데 적이 아니라 충성을 바친 상대의 칼에 어처구니없게 당하는 장수들의 죽음은 열악한 환경에서 적과 마주하고 있는 전선의 장수들과 백성들을 더욱 허탈하게 했다.

 

p.39) 지금 전선의 장수를 단순한 살인자로 만드느냐 명예로운 조국의 간성으로 만드느냐는 전적으로 조선 임금의 의지와 역량에 달린 문제였다.

 

p.68)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이것이 뭡니까?"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으나 확실치 않아 그에게 물었다. "히데요시의 유언시란 거다. 결국 이런 말이나 할 자가 그동안 세상을 피로 물들였던 거다. / …… / 누군가를 죽여서 이뤄야 하는 꿈이라면 그건 허망한 짓이다.

 

p.101) 조정의 대신들은 피난지에서도 전란을 수습할 방안을 내놓기보다는 반대 당파의 인물들을 제거하는 데만 신경을 썼다. 똑같은 말도 내 편이 말하면 충신이고 상대쪽 사람이 하면 역적이 되는 세상이었다.

 

p.125) 신하의 지나친 공은 역모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들의 인정과 의리는 믿을 것이 못 됐다.

 

pp.130.131) "내 일본말 실력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일본군들이 성 안의 백성들을 모조리 도륙한 것은 저들이 조선의 성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성은 일본의 성과는 다르다. 조선의 성은 일정한 행정 단위의 지역을 감싸는 식이다. 따라서 그 안에는 관리나 전투원뿐만 아니라 민가의 일반 백성들도 함께 거주하고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일본의 성은 그 자체가 영주의 집이다. 영주와 그를 지키기 위한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공간이다. 조선의 성처럼 그 안에 일반 백성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군들은 성을 점령하고 나면 성 안의 사람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도륙하는 것이 관례다. 물론 항복하지 않는 자들에 한해서지. 그런 차이점을 왜놈들에게 설명해줬다면 부산성에서도 그렇게까지 무지막지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다. 이런 건 소통의 문제다. 전쟁도 소통의 한 방식이긴 하지만 그건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평화적 교섭 능력을 상실한 집단 사이의 자멸적 소통 방식일 뿐이다."

 

pp.132.133) "물론 나 혼자의 힘으로 일본군들의 약탈과 살인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어느 전쟁에서건 그런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조선 백성의 생명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부역을 하게 할망정 일단 살리고 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자기 기술을 가진 자는 그들대로, 글을 읽을 줄 아는 자는 아는 자대로, 종이를 만들 줄 아는 자는 또 그들대로 살려둘 명분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비록 일본으로 끌려가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어디에서 사느냐보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더 다급한 것이 전장의 일이 아닌가? 또 비록 타국일망정 살아 있다 보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도 생길 수 있을지 모르고, 세상일을 어찌 다 알겠나."/ 나는 내가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고 행동한 것을 다시 또 종사관 앞에서 그대로 말했다./ "너는 지금 네가 하는 말이 얼마나 심각한 말인 줄 알고 하는 소린가? 왜놈들이 조선인 기술자들과 포로들을 끌고 왜국으로 가는데 네 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거 아닌가? 왜놈들이 닥치는 대로 조선인 기술자와 포로를 끌고가서 저들이 훑고 간 고을마다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고, 가마에서 도공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활자와 책이 흩어져 글 읽는 소리가 끊어진 남해의 고을이 한둘이 아니다. 사정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네좀이나 네놈 같은 부왜자들의 부역이 한 몫을 한 것이니 어찌 그 죄가 크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고도 네가 어찌 조선의 충성스런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종사관의 말이 힐난조로 바뀌었다./ "어느 나라 백성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나라가 보호해주지 못해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백성들에게 충성을 강요할 순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어느 나라 백성이냐가 아니라 그냥 살아남는 거다. 백성들에겐 나라의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p.140) "도원수의 권한으로 군법에 의해 목을 벨 것이오. 군령을 어긴 자에겐 죽음이 있을 뿐이오."

 

p.142) "원칙과 규범을 어기고선 천하를 바로 할 수 없는 법이오. 장수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p.152) 이순신의 파면과 복직을 둘러싼 당파간의 이전투구와 전략에 대한 무지는 조선의 임금과 조정 대신들의 치부로 역사에 길이 기록될 만했다.

 

pp.153.154) 일본군들의 코 베기는 정유년(1597년) 8월 남원성 전투를 기점으로 몇 달 동안 극성을 부렸다. 그해 6월 15일 히데요시는 요시라의 반간계에 의한 이순신 제거 작전의 성공을 알리기 위해 보고차 일본으로 건너갔던 야나기시게노부를 다시 부산으로 급파했다. 히데요시는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전 일본군에게 전라도로 들어가서 식량을 확보하고 여러 성을 공격한 후 충청도로 들어가도록 명령한 다음, 사병 1명당 한 되씩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보내도록 명령했다. 이른바 히데요시의 코 베기 명령이었다.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들이 몇 달 동안 싸우지도 않은 채 남해안에 머물러 있자 히데요시는 적극적인 싸움을 독려하면서 군사들에게 가시적인 성과물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후 일본군들은 닥치는 대로 코를 베기 시작했다. 조선군과 명군의 코는 물론 눈에 띄는 모든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가기 시작했다. 일본군들은 조신인들의 코뿐만이 아니라 눈까지 도려냈다. 남원성에서만 베어져 교토로 보내진 코만 3,276내였다. 일본군들은 심지어 전사한 동료들의 코마저 베어 바쳤다. 이 끔찍한 참상을 나는 고니시의 부장으로서 남원성 전투에 참가하면서 똑똑히 보았다.

 

p.254) 못된 친구는 적만도 못한 것이다.

 

p.256) *소설속 내용의 일부는 참고자료의 역사적 기록이나 연구 내용을 참고하였다. (※참고자료 전체,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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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의 전언』에서/ 2017.2.28. <도서출판 황금알> 펴냄

* 허문재/ 대학에서 어처구니없게 해직된 후 20년 가까이 여기저기를 비정규직으로 떠돌았다.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산에서 소설을 쓰고 있던 심정이 어느 순간 이해가 됐다. 소설을 연구하다가 소설을 쓰기로 했다. 소설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저 방외인의 넋두리일지 모르겠다. 지금은 사라진『정신과표현』에 2007년 『여자리콜』을 발표하면서 띄엄띄엄 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집『파워 인터뷰』가 있다. 고려대학교 국어교육학과와 국문과 대학원에서 공부한 기억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westislan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