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인생론』(발췌) : 쇼펜하우어(1788~1860, 72세) 지음
최민홍 옮김
1. 삶의 고뇌에 대하여 --- 3
모든 불행과 괴로움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위안은, 자기보다 더욱 비참한 자들을 바라보는 일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방법이다. 이를 인간 전체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어떤 결과가 돌아올 것인가? 백정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줄 모르고 목장에서 유유히 뛰노는 양떼를 생각해 보라.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 위치에 놓여 있다. 즉 오늘 복된 나날을 즐기고 있지만, 운명이 어떤 재앙을 마련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질병, 박해, 영락(零落), 살상, 실명, 발광, 죽음 등등. /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라. 역사가 그들에게 보여 주는 것은 주로 전쟁이나 반란이다. 따라서 평화는 우연히 차지하게 된 잠시 동안의 기간이며 막간극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일생도 끊임없이 투쟁의 연속이다. 그것은 빈곤이나 권태뿐만 아니라, 같은 인간인 타인에 대해서 역시 투쟁의 연속이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곳곳에서 자기의 적을 발견하게 된다. 즉 인생이란 휴전 없는 싸움으로 인간은 무기를 손에 든 채 죽어 가게 마련이다.
2. 인생의 허무에 대하여 ---1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은 모든 현상에 나타나 있다. 즉, 시간과 공간은 무한하지만, 개체는 어느 면으로나 유한하며, 생명체가 삶을 유지하는 유일한 발판이 되어 있는 현재가 끊임없이 흘러가고, 모든 사물의 의존적이요 상대적이며, 참된 존재가 없고 부단히 움직여 무수한 장애 등등 이 모든 현상에 나타나 있다. 인생은 그 마지막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노력과 장애의 충돌로 일관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시간을 통하여 줄달음치다가 소멸하는 사실은, 하나의 형상으로서 생존의 의지가 우주의 원리로 불괴불멸(不壞不滅)인 반면에, 그 현상으로서 노력은 공허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이 우리 손에서 모든 것을 시시각각으로 무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가치 전체를 잃게 한다.
3. 살려는 의지에 대하여 --- 12
세계의 영혼이 가라사대 "여기 네가 애써 일할 만한 과업이 있다. 너는 거기에 정력을 기울이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 된다. 다른 모든 생물도 마찬가지다." / 인간이 대답하되 "그런데 나는 대체 생존에서 무엇을 얻고 있습니까? 애써 살려고 하면 궁핍에 시달리고, 애쓰지 않으면 권태에 사로잡힙니다. 당신은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고역과 번뇌를 안겨 주면서 이런 보잘것 없는 보수를 주십니까? / 세계의 영혼이 가라사대, "나는 너에게 노고에 알맞는 보수를 주고 있다. 그것이 너에게 보잘것 없게 보이는 것은 워낙 네 자신이 빈약하고 궁핍한 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 인간이 대답하되, "그렇습니까? 저로서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 / 세계의 영혼이 가라사대, "나는 잘 알고 있다. 너에게 말해 줄까? 생존의 가치는 오직 너로 하여금 그 생존을 원치 않게 하는 것이다. 네가 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먼저 생존 자체로부터 단련을 받아야 한다."
4. 사랑에 대하여
우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남자는 본래 사랑에 대하여 한눈을 잘 팔지만 여자는 훨씬 사랑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남자의 사랑은 성교를 마친 순간부터 현저하게 감퇴되어 나중에는 거의 모든 다른 여자가 자기 손에 넣은 여자보다 좋게 보인다. 그러므로 남자는 언제나 상대방 여자를 바꾸고 싶어하지만, 반대로 여자의 사랑은 성교가 끝난 순간부터 증가한다. 이것은 자연이,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번식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남자는 여자만 있으면, 1년에 100명도 더 되는 아이를 낳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리 많은 남편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쌍둥이를 제외하면 1년에 어린애 하나 이상은 낳을 수 없다. 남자는 언제나 다른 여자를 탐내는데 여자 측에서는 한 사람의 남편에게 충실히 의지하려고 하는 것은, 자연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시키는 것이며 여자는 미래의 아기에 대한 부양자를 자기 편에 남겨 두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정조란 남자에게는 부자연스럽고, 여자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의 간통은 그것이 부자연스러운 범행이라는 것에서 남자의 간통보다 훨씬 지탄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 나는 여기서 문제의 핵심에 들어가 부인에 대한 애정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돋보이더라도, 실은 하나의 껍질을 쓴 본능, 즉 종족을 유지하려는 뜻에 지나지 않음을 논증하고자 한다.
5. 여성에 대하여
'여인'이라는 실러의 시는 세밀한 고찰을 하여 대구(對句)와 반구(反句)의 힘으로 많은 감명을 주지만, 내가 보기에는 부인에 댜한 참된 찬송은 그것보다도 존의 몇 마디의 말에 더 잘 나타나 있다. / '여인이 없으면 우리들의 일생은 처음에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중간에 즐거움이 없으며, 종말에 위로가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바이런도 그 Sardanapal의 1 · 2막에 같은 의미를 감상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 "인간의 생애는 여인의 가슴에서 비롯된다. 당신이 맨 처음 지껄인 말은 그녀의 입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당신이 맨 처음 흘린 눈물은 그녀의 손으로 닦았고, 당신의 맨 나중 숨결은 한 여인의 곁에서 거두게 마련이다."
6. 교육에 대하여
우리들의 생애의 시초에서 12년 동안에 알게 된 인상들은 우리가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으며, 그 무렵에 일어난 사건이며 경험하고 듣고 배운 허다한 것이 얼마나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가를 생각하면, 교육의 기초는 이러한 소년 시대의 감수성과 고착성 위에 뿌리 박고 있으며 이 예민한 성능의 소산인 모든 인상을 엄밀하게 규범과 법칙에 따라 선택하고 선도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 실천적이고 활동적인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 이 세계가 참으로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하여 하나의 정확한 근본적인 지식을 갖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다른 어떤 연구보다도 더 오랜 시일이 필요하다. 과학 방면이면 청년 시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을 연구 습득할 수 있으나, 이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만년까지 계속해야 하며, 그래도 충분히 해득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청소년들은 이 지식에 대해서는 저마다 초년생으로서, 처음으로 가장 어려운 과목을 배우게 되는 셈이며, 나이를 먹은 사람도 많은 보습 과정을 필요로 한다.
7. 죽음에 대하여 --- 3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개성은 의의와 가치가 적고 측은하기 짝이 없는 것이니 죽음으로 인하여 잃어버릴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 어떤 참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인류로서의 특질이며, 이러한 특질은 개인의 죽음에 의하여 침해되지 않는다. 영원한 생존은 인류에 대해서 기대되는 것이지, 결코 개인에 대해서 기대되는 것은 아니다. 개체로서의 인간에게 영원한 생존이 부여되었던들, 그 성격은 불변이고 그 지능을 협소하므로, 이런 개체로서 살아 나가는 것이 오히려 적막하고 단조로워 생존에 염증을 일으켜 차라리 그것을 벗어나 자살을 하여 허무를 택하게 될 것이다. 개체의 불멸을 원하는 것은 하나의 혼미를 영원히 지속시키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개성은 모두가 하나의 특수한 혼미와 과오 그러니까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존의 참된 목적은 우리를 거기서 인간, 아니 모든 인간은 그가 꿈꾸고 있는 그 어떤 세계에 살게 되더라도 절대로 행복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게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불행이나 고난이 없는 세계라면 그들은 권태의 포로가 될 것이요, 이 권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 정도에 따라 불행이나 고뇌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보다 더 좋은 세계로 옮기는 데 그쳐서는 충분치 않으며, 그들을 완전히 개조하여 지금의 그들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당연히 지금과는 판이할 것이며, 그 예비적 단계가 되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므로 이 견지에서 죽음에도 도덕적 필요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이 하나의 다른 세계로 옮겨간다는 것과,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개조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죽음은 개체적 의식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의식이 사후에도 다시 점화되어 무한히 존속된다는 희망은 당치 않은 것이다. 설혹 그렇게 되었다고 치더라도 영원히 지속되는 그 의식의 내용은 빈약하고 비속한 사고와 걱정밖에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개체의 의식은 죽음으로 일단락이 나서 영원히 끝장을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생활 기능의 움직임이 그쳐 버리는 것은, 그것을 유지하는 힘에 대하여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 된다. 죽는 데 필요한 자들의 얼굴에 깊은 인식이 충만해 있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8. 문예에 대하여 ---1(부분)
모든 욕망은 필요와 결핍과 가난과 괴로움에서 일어난다. 욕망을 충족시키면 그것을 일단 진정시킬 수 있으나, 한 가지 욕망이 충족된 반면에 충족을 느끼지 못하는 욕망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더구나 욕망은 오래 계속되며 욕구는 무한히 전개되는 반면에 향락은 짧고 적은 분량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을 충족시켜 쾌락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쾌락은 한낱 외형적인 환상에 불과하며, 그 후에 제2의 쾌락이 대신 나타나면 전자는 소실되어 버리고 후자는 후자대로 환상이 계속되는 데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의지를 진정시켜 잠재우거나 계속해서 붙잡아 매어 둘 힘은 찾아 볼 수 없다. 우리가 운명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선물도, 거지의 발 아래 던져진 푼돈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목숨에 풀칠을 하여 그 괴로운 생존을 애일까지 연장시킬 따름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욕망의 지배와 의지의 주권 아래 놓여 있는 한, 그리고 우리가 희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한, 계속해서 안식이나 행복을 손에 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 …… / 시인은 인간의 거울이다. 그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것을 밝은 영상으로 묘사하는 것이 큰 임무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에 대하여 좀 더 고결하라거나 초탈하라거나 도덕적으로 올바르라거나 신앙적으로 믿음이 돈독하라거나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해서는 안 된다 하고 명령조로 주문할 수는 없는 것이다. / 훌륭한 시는 모두가 몸서리치는 인간성이나 커다란 고뇌, 인간의 우환, 악의 승리, 우연의 지배, 옳고 순결한 자의 파멸 등등을 묘사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것은 세계의 성능과 존재의 실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말해 주는 것이다.
9. 윤리에 대하여 --- 3(부분)
생존 의지에 매여서 움직이는 자는 모든 사념과 허욕만을 삶의 꿈으로 삼고 있지만, 생존 의지의 속박을 벗어난 자의 심경은 그 얼굴에도 나타나 있으니 라파엘이나 콜리지가 보여 주는 존엄한 용모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머리를 숙일 만한 참된 복음이 아니겠는가. 그들 속에는 이미 인식만이 남아 있고 의지는 소멸되어 있는 것이다. / 승원 생활이나 고행(苦行)하는 생활이 진실하게 이루어지는 경우의 내면적인 정신과 성행(性行)은, 그 장본인이 자기는 이 세상 가장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자각하고 이 세상의 공허한 모든 쾌락을 무시하고 배격하여 그 확신을 지지 강화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죽는 날과 시각을 오직 해탈(解脫)의 계기로 맞이하기 위해 분명한 기대를 갖고 모든 미혹이나 유혹을 물리치며 그날 그날의 조용한 생활에 안주하여 그 종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0. 종교에 대하여
종교는 대중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생활 필수품이다. 그러므로 종교가 진리를 배격하여 인류의 발전을 가로막더라도 될 수 있는 대로 비난은 삼가야 한다. 그러나 괴테나 셰익스피어와 같은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에게 어떤 종교의 교리를 그대로 믿기를 바란다는 것은 마치 거인에게 난장이의 구두를 신으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다. / 모든 기성 종교는 철학의 왕좌를 빼앗으려고 한다. 따라서 철학자는 종교를 하나의 필요악이요, 빈약하고 병적인 대다수의 인간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한 지팡이로 보는 한편 언제나 적대시하여 싸워나가야 한다. / 근대 철학에서 문제삼는 신은 궁중 감독관의 실권하에 놓인 프랑크와 같은 존재이다. 이 신이라는 낱말은 교권이나 정부에 매어달려 손쉽게 영달할 것을 꿈꾸는 저속한 학자들에 의하여 신의 관념보다 자기네들의 이득과 편의를 위해 보존되어 있다.
11. 정치에 대하여
국가란 인간이라는 육식 동물에게 해독을 끼치지 않고 초식 동물과 같은 인상을 보여 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 인간은 결국 속을 들여다보면 야수요 맹수이다. 우리는 물론 인간만을 알고 있지만, 이들도 그 기회 있는 대로 야수성을 발휘하는 것을 볼 때 새삼 소름이 끼친다. 국법의 사슬이 풀어졌을 때, 무정부 상태가 돌발했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를 곧 폭로한다. / 인간의 사회조직은 전제정치와 무정부 상태의 두 극단 두 개의 대립된 해악 사이에 놓여 있으며 그 한쪽에서 멀어질수록 다른 쪽에 가까워진다. 그렇다고 그 중간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두 개의 해악은 결코 한결같이 두렵거나 부당한 것은 아니다. 전자는 후자에 비하면 그다지 두려울 것이 없다. / 전제정치의 폐단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국한되어 있으며 피해자는 백만 인에 한 사람 정도이다. 그런데 무정부 상태에서는 모든 국민이 날마다 그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12. 사회에 대하여
의사의 눈에는 병자 투성이요, 법률가의 눈에는 악 투성이요, 신학자의 눈에는 죄악 투성이다. 식물학자가 풀잎사귀 하나만 보아도 나무 전체를 알고, 퀴베가 한 토막 뼈다귀만으로 능히 그 동물 전체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행동도 마음에서 나온 이상 그 하나만 보고도 어떤 인간인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관찰을 할 때에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기회를 택해야 한다. 누구나 중대한 사건에 부딪히면 자신을 굽히고 덮게 마련이지만, 사소한 일에는 자유로이 천성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비록 사소한 일이라도 남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이기심을 나타내어 정의와 성실에서 완전히 이탈하면, 충분한 저당을 잡지 않고 단돈 한 푼도 주어서는 안 된다. 같은 이유에서 친구로 자처하는 자라도 사소한 일이나마 사악하고 위선적이고 비열한 성격을 나타나면 큰일을 당했을 때 그의 기만에 속지 않도록 즉시 절교(絶交)하는 것이 상책이다. / 그리고 이 말은 하인에게도 적용된다. 어쨌든 사기한(詐欺漢)에게 에워싸이기보다는 혼자 지내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하다. / …… / 우리의 유일한 친구인 개에게는 다른 동물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호의적이고 성실에 넘치는 듯이 꼬리치는 모습이다. 이 개의 인사와, 허리를 굽실거리거나 얼굴을 히쭉거리면서 예의를 갖추는 체하는 인간의 인사와 비교해 보라. 양자 사이에 어떤 대조를 이룰까? 개에게 나타나 있는 우정(友情)과 성실은 적어도 그 순간만은 인간의 그것보다 몇 천 갑절이나 순수하고 정직하다. / 나는 개와 사귀기를 매우 즐긴다. 개는 솔직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기르는 개는 유리알처럼 투명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 만일 이 세상에 개가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도저히 살아나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13. 행복에 대하여
누구나 자기의 개성에서 떠날 수 없다. 동물에게 어떤 환경을 조성하여 주더라도 자연에 의해 결정적으로 제약된 협소한 테두리 속에 갇혀, 가령 우리가 개나 고양이를 아무리 행복하게 하여 주려고 해도, 그들의 본성과 의식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제한된 범위 안에서 귀여워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경우에 있어서도 개인이 누리는 행복의 최대 한계는 그들의 개성에 의해 최종적으로 예정되어 있으며, 더구나 비범한 높은 쾌락을 맛볼 수 있는지의 여부는 그들의 정신 능력에 의하며 스스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소중한 정신면이 협소하면 외부적인 모든 시도나 타인 또는 운명의 모든 도움도 그를 속된 졸장부로서의 저급한 행복과 쾌락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14. 자아에 대하여
최고도의 정신력을 지닌 자, 즉 흔히 '천재'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사하는 일은 사물의 실체를 송두리째 직각적으로 다루며, 그들의 활동과 감흥은 철두철미하므로 능히 개인 생활을 초월하여, 참된 이지적 생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힘을 기울이는 것은 자기 자신의 정밀한 관찰과 심오한 사상을 그 기능에 따라 미술이나 시, 또는 철학의 형식을 빌어 발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사상과 자기 과업을 갖고 자기 자신 속에서 충분히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고독보다 더 큰 소원이 없고 정적보다 이상적인 것은 없으며, 그 밖의 모든 것은 없어도 견딜 수 있다기보다는 있으면 대체로 쓸모없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된다.
15. 재물에 대하여
돈을 벌기 위해 모든 것을 무시하고 포기하는 것도 자고로 여러 번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금전이란 지칠 줄 모르는 '프로테우스'로, 인간의 여러 가지 욕구를 시시각각으로 실현시켜 다종다양한 사물로 변모되어 나타나므로, 이런 만능의 힘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며, 또 불가피한 노릇이기도 하다. 그런데 금전 이외의 다른 소유물들은 다만 어떤 한 가지 욕구를 충족시켜줄 뿐이다. 예컨대 음식물은 건강한 사람에게 요긴한 것이고, 술은 음주가들이 즐기며, 약은 병자에게 소중하고, 모피는 추울 때의 필수품이며, 여자는 젊은이들이 좋아한다. 즉, 이 모든 것들은 다만 상대적인 의미에서 좋은 것이지 절대로 좋은 것은 돈밖에는 없다. / 돈은 어느 한 가지 욕구를 구체적으로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모든 욕구를 추상적으로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16. 명예에 대하여
작품에 대한 명성은 착실하고 에누리가 없지만, 그것이 작가의 생전에 실현되느냐의 여부는 다만 외부의 사정에 의하여 결정되며, 특히 작품이 고매(高邁)하고 난해할수록 명성은 뒤늦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 세네카도 '아름다운 그 작품의 업적에 명성이 따르는 것은, 마치 육신에 그림자가 따르는 것처럼 분명한 일이지만, 때로는 명성이 앞서기도 하고 뒤지기도 한다'고 말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작품에 대한 질투심에서 묵살하는 일이 있어도 반드시 후일 이런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가 나타나 우리에게 정당한 가치를 부여해 줄 것이다.' 이 말로 알 수 있는 것은, 범속과 우열을 옹호하고 비범과 우월을 억압하려는 그릇된 마음에서 참된 가치를 묵살 또는 무시하는 기술은 오늘과 다름없이 세네카의 시대에도 비열한 악당들의 일거리가 되어왔다는 사실이며, 예나 지금이나 그들의 혓바닥을 뜨겁게 하는 것은 질투이다. 명성은 마치 대기(大器)는 만성(晩成)되는 것처럼, 영원한 생명을 지닌 것일수록 서서히 나타나게 마련이다. 만고에 불변한 큰 명성은 마치 조그마한 씨앗에서 점차로 자라난 참나무와 같으며, 일시적인 명성은 성장률이 빠른 일년초와 같고 그릇된 명성은 잡초처럼 쉬 싹트기도 하지만 뽑히는 것도 빠르다. 그 사명과 활동 범위가 후세에, 즉 인류 전체에 속할수록 당대에는 이단시되기 쉽다. 왜냐하면 그가 제공한 것은 당대만을 상대로 하지 않고, 인류와 영원한 연관성을 지닌 한 부분으로서 동시대에 관련되어 있으므로 거기에는 같은 시대에만 작용하는 단편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17. 처세에 대하여 --- 28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너그럽게 대하면 버릇이 없어진다. 따라서 남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다정하여서는 안 된다. 돈을 꾸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를 잃은 예는 없지만 꾸어준 것이 화근이 되어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는 가끔 볼 수 있으며, 존대하고 냉담한 태도를 취하여 친구를 잃는 경우는 드물지만, 지나치게 친절을 보여 상대방을 버릇없게 한 것이 원인이 되어 헤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더구나 누구에게나 '자기는 저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면, 반드시 건방지게 되어 몇 번 교제를 하거나 약간의 친절을 베풀어도, 곧 이러한 생각에서 저 사람은 나를 괄시하지 못한다는 듯이 거만하게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과 친밀한 교제를 지속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사람들에게 가끔 '나는 너 같은 것은 없어도 무방하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우의를 두텁게 한다. 아니 일반 사람들과 교제할 때에도 차라리 일종의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그 우의를 한층 더 값있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존경하지 않는 자가 존경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자가 자기에게 소중하더라도 그에게 죄를 감추듯이 이를 비밀에 부쳐야 한다. 이와 같이 자기의 호의를 충분히 나타내지 않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될 수는 없지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지나치게 친절을 베풀면 버릇 없이 굴지 않는 개가 없거니와 인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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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펜하우어 인생론』에서/ 1988.2.1. 1판1쇄/ 2006.12.5. 3판1쇄/ 2014.8.30. 3판 4쇄 <집문당> 발행
* 최민홍/ 일본 동양대학 문학부 첧학과 졸업/ 서독 뮌헨대학 철학박사 학위 취득/ 중앙대학교 교수 등 역임/ 주요 저서 『철학개론』『실존철학 연구』『비교철학』(영문판) 등, 주요 역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플라톤 전집』(6권), 『물과 원시림 속에서』(슈바이처) 등, 주요 공저 『Philosophisches Worterbuch』(서독: Kroner출판사),『Handbook of World Philosophy』(미국: Greenwood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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