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시학의 요소들(발췌)
-목소리, 언어, 하모니카 그리고 음악
손광수
밥 딜런의 노래를 시로 받아들이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핵심적 요소들이 있다. 우선 언어(가사)와 음악(사운드)이 있다. 그리고 이 두 요소를 연결해 주는 목소리가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추가하자면 하모니카가 있다. 하모니카를 사운드에서 따로 분리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모니카가 딜런의 목(목소리) 가까이에서 목소리의 분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질문 하나를 먼저 던져 보자. 딜런의 노래에서 언어와 음악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 밥 딜런은 이 관계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가사와 음악, 전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소리로 들을 수 있습니다."
"…… 노래 가사는 그저 종이를 위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
〔질문자〕: 당신에겐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당신의 음악과 언어가 소리를 내는 방식인가요, 아니면 내용이나 메시지인가요?
〔밥 딜런〕"일어나고 있을 때 그 전체 다지요. 말들이 내는 총체적인 사운드, ……."
(Ricks 12)
이 언급들에서 딜런은 언어와 음악을 서로 분리하지 말아 달라고 일관되게 요청한다. 즉 가사가 음악의 요구에 종속되지도 지면에 따로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말들이 내는 총체적인 사운드"를 이해해 달라고 말이다. 그가 하고자 했던 노래는 힌치(Hinchey)의 말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노래가 아니라 시처럼 작용하는" 노래다. 이 노래로서의 시는 옛날 시의 전통(구술 전통), 즉 "숨결과 혀와 공기 속에 사는 시"를 부활시킨다는 의의를 갖는다. "대부분의 인쇄된 시의 구술적이고 청각적인 차원은 지난 2~3세기 동안 차츰차츰 약화되어 왔고, 그 결과 오늘날의 시는 대개 정신의 숨결과 정신의 귀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5).
이러한 시와 노래의 분리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기에 시처럼 작용하는 노래란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딜런의 노래는 문자 전통으로서의 시와 구술 전통으로서의 대중음악에서 함께 영향 받았다. 또한 그의 노래는 이 양 매체 사이의 분리와 거리를 뚜렷이 인식한 데서 나온 생산물이다. 그리고 딜런은 이 양자를 결합시키려 의식적으로 노력한 특별한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서 그의 노래가 과연 어떤 시적 효과를 갖는지 질문할 수 있다. 필자는 레볼드에게서 딜런의 노래가 갖는 효과를 이해할 단서를 찾는다.
이 시인은 공연자이고 그 시의 많은 부분은 공연과 음악 속에 있다. 비평가들은 새로운 시학 안에서 작업해야 할 것이다. 이 시학 속에서 고려하는 노래는 음악에 맞춰진 시가 아니며, 가사가 결코 자율적이지 않고 일련의 비언어적인 요소들, 즉 음악, 공연자의 목소리, 페르소나 등과 항상 상호작용하고 있는 복잡한 형식으로서의 노래다. …… 실제로, 가사와 음악 그리고 라이브로 전달되는 목소리와 페르소나는 공연 속에서 동시에 인식되는 요소들이다. 이 요소들이 상호작용할 때, 공연되는 노래라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구술 예술 형식이 등장한다.(59)
레볼드는 딜런의 노래가 지닌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 시인이 바로 공연자라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공연 속에서 언어적 요소가 비언어적 요소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학"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필자는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총체적 효과를 구성할 능력이 사실 없다. 필자는 그 일을 미래로 연기하면서, 단지 그 밑그림만을 그려 보려 한다. 이를 위한 방편으로 이제부터 딜런의 시학을 이루는 요소들을 하나씩 주목할 것이다. 그 요소들은 목소리, 언어, 하모니카 그리고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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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목소리다. 노래에서 목소리가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목소리는 악기의 일부다. 그러나 다른 악기와 달리 가사 언어를 직접 전달하고 표현한다. 그런 점에서 목소리는 언어 요소와 비언어 요소, 즉 언어와 사운드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레볼드는 딜런이 노래할 때, 그의 목소리가 원래의 가사를 "박자에 따라 다시 쓰는" 측면에 주목하면서 이를 "목소리 채색(vocal painting)"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57). 이는 가사라는 원래의 텍스트에 "이차적인 리듬 구조(a secondary rhythmical structure)"를 덧씌우는 과정으로, 예를 들어 "전달 속도를 빨리하고, 리듬과 음색을 균열시키거나, 특정한 단어를 고립시키는" 등의 방식이 있다(64). 우리는 딜런의 노래 세계에서 펼쳐지는 언어와 음악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목소리 표현과 창법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첫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딜런의 목소리는 특별한 경험이다. 1960년대 당시 딜런이 속한 컬럼비아 레코드사는 "딜런의 노래를 딜런처럼 부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선전했다. 그런데 이 광고 문구는 전혀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딜런의 노래를 다른 가수가 부를 경우 그 두 곡은 아주 다른 노래가 된다. 그 이유는 그의 목소리 창법이 흉내가 불가능할 만큼 특이하기 때문이다. 미국 소설가 제임스 캐롤 오츠(James Carol Oates)는 딜런의 거칠고 훈련되지 않은 듯한 목소리를 처음 접하고 나서 "사포(sandpaper)가 노래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녀처럼 딜런의 이 투박한 목소리에 매혹된 이들이 있는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이 목소리 때문에 딜런을 싫어한다. 가령 시인 필립 라킨(Philip Larkin)은 딜런의 비음 섞인 목소리를 "까악까악거리고, 우롱하는" 소리라며 불편해했다(Day 2). 결국 딜런의 목소리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은 그의 목소리 창법이 갖는 유일무이함에 매혹된다. 반면 딜런의 목소리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은 노래를 못한다는 이유로(?) 싫어한다.
딜런의 이 특별한 목소리는 과연 어디서 왔는가? 이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비밀은 그의 창법이 낭송과 노래하기의 결합이라는 데 있다. 레볼드의 표현을 빌리면, 딜런이 노래하는 목소리는 "낭독(poetry readings)과 쾌활한 리듬과 실제 노래하기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63). 또한 데이(day)의 설명에 따르면, 딜런의 목소리는 "멜로디를 따라가면서도 음악과 조화되지 않고 무조적으로(atonal) 분리되며, 이 과정에서 음악 요소들은 언어 질서(verbal order)의 긴급함에 가차 없이 굴복한다." 이는 청자가 음악에만 몰두하는 것을 방해하면서 목소리와 언어의 상호작용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2-3).
그의 초기 공연 영상을 보면, 딜런은 자주 목을 꼿꼿이 세우고 허공을 뚜렷이 응시하며 노래한다. 그 모습은 마치 허공으로 지나가는 문장을 읽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가 노래하는 방식이 낭송과 유사해지는 경우 그러한 인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여기서 그의 목소리는 낭송과 노래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다. 이를 텍스트와 공연 사이를 순환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마이젤(Meicel)에 따르면, 딜런의 창법은 "노래의 요소들을-텍스트와 목소리, 시와 음악을 - 끊임없이 불완전한 정렬(imperfect alignments)로 짜 엮으며, 이 사이에서 다중적 관계를 생성"시킨다(110). 결국 딜런의 목소리는 자신의 문학적 추구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그만의 특별한 방식이다.
딜런의 목소리는 또한 노래의 페르소나를 표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공연 속에서 딜런은 배우처럼 "가면으로서의 페르소나"가 된다. 우선 언어적 차원에서 페르소나는 노래 속의 'I'이다. 노래를 감상할 때 우리는 이 'I' 를 별 생각 없이 가수라고 받아들이지만, 사실상 노래마다 담고 있는 이야기가 다르고, 그 이야기 속의 'I'는 각각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가 노래로 표현하는 대표적 페르소나에는 예언자, 무법자, 떠돌이, 사기꾼, 농담꾼, 도둑 등이 있다. 이는 언어적 차원에서 등장하는 마스크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페르소나와 달리 목소리 자체로 표출되는 페르소나가 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초 그의 포크 시기 노래를 들으면 갓 20세를 넘긴 청년의 목소리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실물을 사진으로 보거나 미리 그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한 그의 목소리는 산전수전 다 겪은 방랑자 노인의 목소리에 가깝다. 흥미롭게도 록 음악 시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회춘한다. 실제 나이에 가까운 목소리로 복귀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포크 시기 목소리를 그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뉴욕에서 데뷔하기 일 년 전 그는 미네소타 대학 근처 딩키타운(Dinkytown)의 커피 하우스들(대표적으로 Ten O'Clock Scholar)에서 노래했다. 당시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목소리를 아주 맑은 미성으로 기억한다. 1970년대에 컨트리 음악을 시도했던 앨범 『내슈빌 스카이라인(Nashville Skyline)』에서 그는 다시 이 맑은 미성으로 복귀한다. 사실 딜런의 목소리는 카멜레온처럼 끝없이 변화한다. 그의 목소리 변화는 신체적 나이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때문에 딜런의 목소리에 익숙했던 감상자들이 때때로 새로운 앨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딜런의 목소리가 특이하게 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창법이 낭송과 노래하기 사이를 유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창법은 가사의 문학성을 음성적이고 음악적인 차원에서 구현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이 특이한 창법 때문에 때론 그의 목소리가 멜로디를 정확히 따르지 않거나 배경 음악과 어긋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 딜런의 목소리는 공연 속에서 표출되는 페르소나의 일부다. 그리고 시기별로 변화하는 딜런의 목소리는 그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다.
따라서 딜런의 목소리에 매혹되는 이들은 이런 익숙지 않은 불편함에서 오히려 특별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불편함은 일종의 '낯설게 하기' 효과를 발휘한다. 그 효과는 두 가지다. 첫째로, 이는 노래의 가사 언어에 특별한 집중을 하도록 이끈다. 둘째로, 그의 목소리는 다른 가수들에게서는 접할 수 없는 이질적인 소리로 들리게 된다. 딜런의 노래 세계에서 이 목소리는 가수 자신을 표현하는 동시에 감추는 가면이다. 이 책의 제1장에서 밥 딜런의 쉼 없이 변화하는 정제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목소리는 바로 이 유동적인 정체성을 사운드로 물질화한다. 딜런의 끊임없는 정체성 변경은 바로 이 수시로 바뀌는 목소리 속에서 춤추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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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살펴볼 대상은 딜런의 언어다. 딜런의 노래에서 언어는 음악보다 상대적으로 고정적이다. 그는 공연 과정에서 언어적 요소에는 거의 변화를 주지 않는 반면 음악적 요소는 끝없이 변화시킨다. 사실 딜런은 공연할 때마다 같은 노래를 전과 다르게 부르는 것으로 악명(?) 높다. 니콜라스 로(Nicholas Roe)에 따르면, 딜런은 공연 무대에서 " '레코드 음악 (recorded music)' 의 고정성"으로부터 끝없이 도망친다. 즉 딜런은 그의 과거 노래를 항상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어 부른다. 때문에 청중들은 익숙하게 듣던 노래조차 때로는 무슨 노래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로에 따르면, 이는 "쇼-비즈니스 세계에서 일종의 '자살-충동(death-wish)'에 가까운 행위"다. 스타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그들이 익숙하게 아는 방식으로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딜런은 이 익숙함을 거부하고 파괴한다. 흥미롭게도, 이 익숙함의 파괴가 딜런에게는 예술적 생존의 문제다. 딜런은 과거의 고정성에서 늘 탈피하려 하기 때문에, 이미 녹음했던 공연 무대에서 망각하고 분해해 버리는 것이다(88-89).
그런데 딜런이 주로 변화를 주는 것은 멜로디와 리듬과 사운드, 즉 음악적 요소다. 그리고 언어적 요소인 가사는 상대적으로 바뀌지 않는다(이는 다만 상대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가령 딜런의 가사집 버전과 실제 공연되는 노래의 가사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 또한 공연에서 딜런은 긴 노래의 일부 절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채 부르기도 하고, 일부 노래는 나중에 가사를 많이 바꾸기도 한다. 이러한 가사의 변경이 딜런 가사 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논쟁점임을 밝혀둔다). 따라서 딜런의 노래 세계에서 가사 언어는 음악보다 상대적으로 고정적인 요소이다. 이 상대적으로 고정적인 가사 언어가 불규칙하게 형태를 바꾸는 음악과 늘 새롭게 합류하는 지점에서 딜런의 노래가 지닌 시적인 힘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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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밥 딜런』에서/ 2015.6.30 초판 1쇄/ 2016.10.17. 초판 2쇄 <도서출판 한걸음 · 더> 발행
* 밥 딜런/ 본명: 로버트 앨런 짐머맨(Robert Allen Zimmerman), 1941년 미국 미네소타주 출생, 동유럽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 집안. 딜런의 가정은 부유한 편이었고, 이 '중산층 가정에 대한 반감'은 그가 이름을 바꾼 이유이기도 함. 노래「바람만이 아는 대답」「구르는 돌멩이처럼」등, 앨범 『플래닛 웨이브스(Planet Waves)』『트랙 위에 피(Blood on The Tracks)』『욕망(Desire)』등. 1997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처음 추천됨 _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
* 손광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서 미국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밥 딜런(Bob Dylan)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받음, 현재 동국대와 안양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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