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자비 출판/ 이화은

검지 정숙자 2011. 2. 19. 08:25

 

 자비 출판


  이화은



  어떤 시인은

  창작 지원금이라는 불룩한 이름으로 시집을 내고

  시집을 냈다하면 매번

  기름진 상금의 과녁을 명중시키는

  명사수 같은 시인도 많은데

  시가 두엄두엄 쌓이면

  나는 또 한 번 내 시에게 미안해진다

  등록금 없이 등 떠밀어 학교 보내는

  무능한 가장처럼

  부실한 혼수에 얹어 시집 보낸

  좌불안석 딸 둔 에미처럼

  짝 없이 늙어가는 저것들을 또 어찌해야 하나

  세상의 자비는 늘 내게서 너무 멀리 있으니

  내 피와 살을 먹여 키운

  둥기둥기 어여쁜 내 새끼들 살가운 문둥이들

  후한 인세라는 꽃가마로 모셔갈, 그런

  대자대비 출판사는 진정 없을 것인가

  두엄더미 위에 노란 민들레꽃 한 송이

  철없이 방긋 웃는, 지금은 다시 詩 같은 봄


  *『주변인과 시』2010-가을호 <신작시>

  *『미네르바』2011-봄호 <리뷰>

  --------

  *이화은/ 경북 진량 출생, 1991년『월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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