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숲/ 조정인

검지 정숙자 2011. 3. 10. 20:07

   숲


    조정인



  검고 긴 총신이 질주하는 멧돼지를 향해 겨눠진다, 갈참나무 숲 사이


  폭풍처럼 화려한 화약의 꽃이 사라진 지점은 잠잠하다 덩치 큰 슬픔

이 모로 쓰러진 곳으로 달려간 숲의 고요가 슬픔의 어깨를 흔든다 슬픔

을 보듬어 털복숭이 왼뺨에 오른뺨을 댄다 슬픔의 눈꺼풀을 쓸어내린다

들쳐 업고 뛰기엔 너무 늦어버린, 물로 씻은 약사발처럼 아무것도 뒤져

낼 수 없는 막막한 구급상자


  총의 개념은 신석기시대 바람 부는 숲에서 세워졌다 한다, 휨의 일관

성으로 방향을 보존하는 숲에서 비틀림의 에너지를 지켜보는 석기인의

순결한 희열을 나는 상상한다 순결은 분별이 끼어들기 이전*의 순간몰

입상태 불현듯 눈이 멀어 전신이 눈이 되는, 신성의 얼굴과 마주한 백열

상태


  나는 지금 흔들리는 숲에서 한 사람을 그리워한다, 검은 수염에 뒤덮

여 그는 다만 숲의 고요를 목도중일 것이다 숱 많은 눈썹 위로 숲의 빛

이 내려쌓일 것이다 깜깜한 진흙반죽으로부터 고대인을 통과하여 영원

히 인간게놈 정중부에 꽂히는 빛의 화살촉 신성은 자신의 관성으로 인

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을 관통하며 시제는 현재다


  * 마이스터 엑카르트(독일 1260~1327): ‘순결이란 원죄나 이분법 분리의식이

싹트기 전의 존재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우리의 원초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에서 영향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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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2011-3월호 <신작특집>에서

  - 조정인/ 서울 출생, 1998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