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았나? 진짜 진짜 웃음을 보았나!
노혜봉
번진다는 것은 넘쳐흐른다는 뜻이다 번진다는 것은 물결치며 반짝이를 한가득 찬란찬란 뿌려주는 일 한 아름 선물을 받는 일이다 안동 고택 마을에 들어서니 은행잎도 차르르 한 옆으로 길을 내며 웃는다 꽃담의 기왓장들도 왁자한 구경꾼 품새 보려 어깨동무 삼아 와르르 무너지듯 웃는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 가짜 웃음일랑 아예 물렀거라) 안채 사랑채 창문들은 오랜만에 목 길게 늘이고 새파란 가을 햇살 받으려 두 팔 벋고 기지개 좌악 펴며 웃는다
누렇게 시든 잡초가 언뜻 보이는 뒤란에서 방금 나오는 저 양반님네, 옳거니! 왼손은 뒷짐 진 채 긴 담뱃대 손에 들고, 저 양반님네 갈지자 모양새로 웃는다 하회탈을 보라신다 얼굴 조곤조곤 들여다보니 영락없는 진짜 웃음이다 커다란 입은 반쯤 귀에 걸고, 눈두덩과 눈 꼬리가 갈매기 파도무늬를 지으렸다 눈썹도 꿈틀꿈틀 비스듬히 몸을 틀더니…… 진짜 흙으로 빚은 고추장 항아리 뚜껑이 쩍! 단번에 금이 가면서 벌건 대낮에 붉은 산 하나를 타 넘었겠다 콧구멍은 아직도 벌름벌름 야살스런 부네*의 춤사위 배꼽 먼지라도 후벼 팔 양인지,
앙글방글 웃다가 앙실방실 상긋방긋 웃다가 새물새물 빵글빵글 웃다가 파안대소(破顔大笑) 홍연대소(哄然大笑) 박장대소(拍掌大笑) 요절복통(腰折腹痛) 포복절도(抱腹絶倒) 웃다가 울다가…… 바람이 장구채 한 번 탁 내리치니 얼쑤! 고목 은행나무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던 은행잎들이 차르르 차르르 흩뿌리며 지화자 지나온 길들을 지운다
물도리동 고택 골목을 돌아 나오니 만송정 조선 소나무들이 한껏 맘껏 푸른 솔잎 웃음을 싸아하니 바람에 감는다 물도리동 강물에 웃음이 찰방찰방 부용대 절벽아래 정강이를 간질인다 웃음이 반짝반짝! 번진다 때마침 해넘이! 황홀하다 하늘도 감동한 저 불콰한 얼굴 좀 보시라 모처럼 만난 진짜 진짜 웃음판 고을이라니!
*부네: 하회별신굿 탈놀이 여섯째 마당, 양반과 선비 마당에 나오는 소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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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월간『유심』2011-봄호 <유심 시단>에서
- 노혜봉/ 서울 출생, 1990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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