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위독하다
김승희
결국 모든 시의 제목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위독하다…는
이상은 그렇게 위독의 문학을 했다,
나는 이렇게 위독하다고,
김유정도, 카프카도 그런 위독의 문학을 했다,
폭설이 가혹해지면
봉쇄 수도원처럼 침묵과 패쇄의 자리가 된다,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고
극한의 맹지, 봉쇄추위 속에 누워
백년 쯤 전에 태어난 이상, 김유정, 윤심덕, 백석들의
고독과 위독을 생각하고 있는데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수선화와 유채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샛노란 소식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수선화가 유채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는……
혹한에도 아랑곳없이 수선화가 무리지어 꽃을 피워
싱그러운 향기를……
아, 제발,
아랑곳없이……
그런 말
위독의 문학도 그런 최후의 경지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아랑곳없이……
폐결핵 3기에서도
심장에서 더운 김이 펄펄 나고
구름도 얼어붙은 차디찬 푸른 하늘에 링거 병을 매달고
아랑곳없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최후의 그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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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10.11-12월호 <시사사 포커스>에서
* 김승희/ 전남 광주 출생, 1973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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