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가죽 방패/ 김백겸

검지 정숙자 2011. 2. 4. 01:31

    가죽 방패


      김백겸



  항공사진에서 내가 사는 도시를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미로세계에

갇힌 쥐였습니다

  숲을 벗어나지 못하는 호랑이였고 책상 위를 기어가고 있는 무당벌

레였습니다

  책상의 끝이 천 길 낭떠러지임을 모르는 채

  먹이를 찾아 망상의 독을 안고 걸어가는 사막의 전갈이었습니다

  독이 조금씩 시간에 흘러 들어가 운명이 딱딱해졌습니다

  돌이 된 아들은 서지 못하는 뇌성마비로 판명되어 십 년을 재활병원

에 출근했습니다

  사업이 IMF 암초에 걸려 은행부채의 상환을 위해 매달 적금을 부어

야 했습니다


  현실의 악취와 중독이 지옥처럼 깊어지고 세상과의 불화로 내 영혼

이 썩기 전에

  천둥치는 소리가 나고 시간과 공간이 모래시계의 유리처럼 깨어져

나갔습니다

  눈이 떠지자 나는 마야 속에서 영혼의 병을 고치기 위해 누워있는 환

자였습니다

  형형색색의 도해가 그려진 현실과 업의 만달라에서 꿈의 가쁜 숨을

쉬고 있는

  가죽방패를 잃어버린 전생의 샤먼이었습니다



  *『문장』2010-가을호, 「시의 향기」에서

  * 김백겸/ 충남 대전 출생,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