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방패
김백겸
항공사진에서 내가 사는 도시를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미로세계에
갇힌 쥐였습니다
숲을 벗어나지 못하는 호랑이였고 책상 위를 기어가고 있는 무당벌
레였습니다
책상의 끝이 천 길 낭떠러지임을 모르는 채
먹이를 찾아 망상의 독을 안고 걸어가는 사막의 전갈이었습니다
독이 조금씩 시간에 흘러 들어가 운명이 딱딱해졌습니다
돌이 된 아들은 서지 못하는 뇌성마비로 판명되어 십 년을 재활병원
에 출근했습니다
사업이 IMF 암초에 걸려 은행부채의 상환을 위해 매달 적금을 부어
야 했습니다
현실의 악취와 중독이 지옥처럼 깊어지고 세상과의 불화로 내 영혼
이 썩기 전에
천둥치는 소리가 나고 시간과 공간이 모래시계의 유리처럼 깨어져
나갔습니다
눈이 떠지자 나는 마야 속에서 영혼의 병을 고치기 위해 누워있는 환
자였습니다
형형색색의 도해가 그려진 현실과 업의 만달라에서 꿈의 가쁜 숨을
쉬고 있는
가죽방패를 잃어버린 전생의 샤먼이었습니다
*『문장』2010-가을호, 「시의 향기」에서
* 김백겸/ 충남 대전 출생,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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