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50년 만의 축의금/ 김정자

검지 정숙자 2016. 10. 8. 02:19

 

 

    50년 만의 축의금

 

    김정자(시인, 문학평론가)

 

 

  K대학에서 특강이 있는 날이었다. 아직도 차가움이 남아 있는 이른 봄날 아침, 청매화만 그 고결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학교 측에서 축사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았나 보았다. K대학의 명예교수이며 시인이신 강희근 교수님이 초대 되었고, 축하 말씀을 해 주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말씀 도중에 자신의 개인적인 인연에 대해서 한 말씀 하겠다고 했다.

  50년 전의 일이라고 했다.

  강 교수님은 대학 재학시절이었는데, 그해 신춘문예에 시작품이 당선 되었단다. 너무 기쁘고 벅찬 가슴이 되어 스승 서정주 선생 댁을 방문했다 한다.

  서정주 선생은, 내가 오늘 시인의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자네도 같이 가지 않겠느냐 하셨단다. 강 시인은 엉겁결에 스승을 따라 시인의 결혼식에 참석했단다. 그런데 호주머니에 돈이 한 푼 없어 빈손으로 식장에 앉아 있었단다.

  풀코스 음식이 나올 때마다 무임승차한 것 같아서 점점 불편했단다. 그래도 와중에 우아한 신부의 자태와 시인 신랑을 지켜보면서 멀찍이 앉아 있었단다. 

  그러고 나서 50년의 저녁이 가고 50년의 아침이 온 날, 그때 그 신부가 대학에서 특강을 한다기에 자신은 봉투에 '축 화혼' 세 글자를 써서 가슴에 넣고, 축사를 부탁받은 자리에 왔다 했다.

  그러고는 호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특강 강사로 온 50년 전의 그 신부였던 내게 전하였다.

  청중은 우레 같은 박수를 쳤다.

 

  살다가 어찌 이런 일도 있는가 싶어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우연과 필연이 뒤죽박죽 들끓어 왠지 가슴이 쓰리기도, 아련하기도, 감사하기도 아프기도 하여 분간 못할 슬픔 같은 것이 가슴 그득히 차오름을 느꼈다.

  엉겁결에 50년 전의 아득한 세월에 못다 했다는 그 축의금을 받았지만, 그것은 돈이 아니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축복이었고, 감사함이었고, 내 생의 아름다운 모퉁이에서 받은 예술 작품이었다.

  주례를 해 주셨던 미당 서정주 선생도, 그날의 시인 J신랑도, 이젠 모두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에 마음이 아득하고 쓰라렸다.

 

  오랜 만에 하는 특강이라 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더러는 빠트리고, 더러는 잊어버려 두서없는 강의를 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풋풋한 가슴으로 벅찼던 그때의 그 청년 시인도 머리칼이 허옇게 세어 버린 노 시인이 되어 있었다. 오랜 연륜이 쌓여 단단하게 뼈대가 굵어진 시작품을 쓰는 훌륭한 노 시인, 노 교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그 우아한 신부였던 나도, 노 교수가 되어, 대학의 명예교수로, 오랜 세월을 품고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

  50년 만의 축의금을 헌정한 노 시인 강희근 교수의 시를 새삼스런 마음으로 되새겨 본다.

 

 

  나의 귀한 선생님이 시인의 결혼식에

가는데,

  따라가세, 하여

 

  그냥 따라가서, 주머니에 축의금도 없는데

  따라가서

  멀찍이 앉아

  시인 신랑과 신부를 보면서, 신부의 우아함을 보면서

 

  축하하면서

  풀코스 음식이 나올 때마다 무임승차한 것

  같아서

 

  점점 불편해졌었네

  아, 시간은 전선의 전류처럼 지나가고

  50년의 저녁이 가고 50년의 아침이 왔네

 

  오늘 그때의 그 신부가

  대학에서 특강을 하는 날

 

  나는 봉투에 '축 화혼' 세 글자를 써서

  가슴에 넣고

  50년 전으로 돌아가려 하네

  그때처럼 멀찍 앉아 축하하려고 하네 

     -강희근, 「오늘」전문 

 

 

  풋봄의 싸늘한 추위 속에서도 매화처럼 고결하게 나이 먹어 가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오, 인생은 아름다움으로 충만하기를 ….

 

   ---------------

*『월간문학』 2016-10월<목동살롱 10>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