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이태동_해외 수필 읽기/ 오카 강변을 여행하면서 : 솔제니친

검지 정숙자 2016. 10. 5. 01:40

 

 

<솔제니친의 서정적 산문 다섯 편>- 5

 

 

     오카 강변을 여행하면서

 

     솔제니친(1918~2008, 90세)

 

 

  중부 러시아의 시골길을 지나노라면, 러시아의 풍경을 조화시키는 열쇠가 어디에

있는가를 스스로 이해하게 된다.

   그 열쇠는 교회에 있다. 나직한 산이나 언덕 위, 그리고 많은 강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교회, 하얀 옷과 빨간 옷을 입은 공주들처럼, 초가집과 판잣집 위에 우뚝 솟

은 세련된 윤곽의 가지가지의 종루(鐘樓)들.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고

개를 끄덕이는 것 같다. 그들은 서로 보이지 않는 절연된 마을에 있으면서도 한결같

이 유일한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는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법석대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이나 초원을 거닌다 해도 그대

는 조금도 외롭지 않으리라. 병풍처럼 늘어선 숲 위에서, 들판의 건초더미 위에서,

그리고 지구의 둥그런 대지 위 어디에서나, 종각의 지붕은 언제나 그대를 손짓하며

부르는 것이다. 그것이 코르크로 베츠키의 종각이건 류비치나 브릴로키스프의 둥

그런 종각이건 간에.

  그러나 그대는 마을로 들어가면서 곧 알게 되리라. 멀리서 그대를 반기던 교회들

은 살아 있지 않은 죽은 교회란 것을! 십자가들은 먼 옛날에 이미 부서졌거나 휘어

져 있다. 낡아빠진 교회 지붕은 썩어 문드러진 횡목과 대들보에 의하여 겨우 지탱되

고 있을 뿐,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다. 지붕과 벽 틈에는 잡초가 무성히 자라고, 교회

근처의 묘지는 황폐했으며, 십자가는 제멋대로 뒹굴고, 무덤은 거의 파헤쳐져 있다.

그리고 제단 위에 그린 성화(聖畵)는 오랜 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거기에는 파렴

치한 낙서만이 가득 씌어 있었다. 교회 입구에는 물통이 놓여 있고, 그쪽을 향해 트

럭이 다가서고 있다. 트럭이 한 대 교회 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포대를 싣고 나오고

있다.

  어떤 교회에서는 선반이 요란스럽게 진동하고 있다. 또 성당은 문이 굳게 닫혀 조

용하기만 하다. 또 어떤 성당은  집단농장 클럽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착유량(搾

量)을 더 높이자!" "평화에 대한 시" "위대한 공적."

  사람들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무뚝뚝했다. 그러나 저녁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

을과 들판과 숲 위로 메아리치며 퍼져 나갔다.

  아! 이 종소리만이 자질구레한 지상의 일들을 잊고 영원한 사색의 시간을 바쳐야

한다고 우리를 일깨워 준다. 지금 우리를 위해 그 옛날의 선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은 이 종소리뿐이다. 그것만이 네 발을 짚고 ××× 타락하는 일에서 사람들

을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우리네 조상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 인생의 모든 의의를 이 교회, 이 종

각에다 쏟았던 것이다. 비치카야, 되는대로 해치워라! 힘차게 때려부숴라! 아까운

게 뭐냐! 영화는 여섯 시에 댄스는 여덟 시에 시작되니 말이다.

 

   (로그 후기: 매일 한 편씩 5일 동안, 그후 '해설' 수록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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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바다』 2016-가을<이태동/ 해외 수필 읽기>에서

 * 이태동/ 문학평론가, 평론집 『나목의 꿈』『한국 현대시의 실체』등, 수필집『살아 있는 날의 축복』『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