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의 서정적 산문 다섯 편>- 4
산에서 맞은 뇌우(雷雨)
솔제니친(1918~2008, 90세)
캄캄한 밤에 우리는 산마루턱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우리는 천막에서 기어 나와
몸을 피했다.
뇌우(雷雨)는 산등성이를 넘어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칠흑 같은 암흑- 위도, 아래도, 지평선도 없다. 그러나 째지는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번쩍이기 시작하자, 빛에 어둠이 갈라져 나가며 벨로라카이와 주구트
를차트의 거대한 산맥과 우리 옆에 산처럼 높이 뻗은 검은 소나무들이 그 모습을 드
러냈다. 비록 순식간이지만 우리는 견고한 대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러나 주위의 모든 것은 다시 암흑과 심연(深淵)에 잠겨 있다.
어둠과 빛이 교차하여 섬광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하얀 빛, 불그스름한 빛,
보랏빛…… 그리고 그 빛들이 일어나는 곳에 산과 소나무들이 자기의 위용을 과시
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사라지고 다시 어둠에 잠겼을 때는 언제 그들이 있었느냐는 듯,
도저히 그들의 존재가 믿어지지 않았다.
천둥소리는 계곡마다 울려 퍼져서 그토록 요란하던 계곡물 소리도 들리지 않았
다. 사바오프의 화살처럼 수많은 번개가 산마루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바위에 부딪
쳐 흩어지는 물살처럼 가느다랗게 굽이치며 쪼개져 나갔다. 마치 그곳에 있는 생물
을 모조리 찔러 박살내기라도 하듯이.
그러나 우리는…… 우리는 번개와 천둥과 소나기를 잊은 지 오래다. 마치 바다의
물방울이 태풍을 두려워하지 않듯이.
우리는 이 세계의 하찮고 보잘것없는 고귀한 하나의 조각이 된 것이다. 우리 눈앞
에…… 오늘 처음으로 창조된 이 세계의.
(※ 블로그 후기: 매일 한 편씩 5일 동안, 그후 '해설' 수록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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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바다』 2016-가을호 <이태동/ 해외 수필 읽기>에서
* 이태동/ 문학평론가, 평론집 『나목의 꿈』『한국 현대시의 실체』등, 수필집『살아 있는 날의 축복』『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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