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해설_도덕적 진실의 발견과 절제된 서정적 산문/ 이태동

검지 정숙자 2016. 10. 6. 00:45

 

<해설>

 

 

    도덕적 진실의 발견과 절제된 서정적 산문

     -솔제니친의 서정적 산문 다섯 편

 

      이태동

 

 

  옛소련의 세계적인 반체제 작가로 알려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1918년 12월 11일 북 코크스 부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6개월 전에 죽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타이피스트로 일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로스토브 대학의 지역 수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는 1941년 2차 세계대전 중에 졸업을 하고 징집을 당해 군에 들어가 1942년 포병학교로 보내져 전방에 포병 정찰대의 임무를 맡을 때까지 말이 끄는 수송마차를 몰았다.

  1945년 2월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스탈린을 비방하는 말을 썼다는 이유로 갑자기 체포되어 8년 형을 받고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 1946년부터 1950년까지 죄수들로 구성되어 있는 연구소에서 그는 수학자로서 일을 했다. 그러나 1950년 정치범들만 수용된 새로운 종류의 연구소로 보내져서 육체노동자로서 일을 했다.

  그의 형기가 표면적으로 끝나자, 그는 어떤 행정명령으로 남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되어 그곳에 있는 시골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가르치면서 몇 년을 보내며 비밀리에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출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마트라오네 집」과 『이반 데니소비치의 삶의 하루』는 이때 씌어진 작품들이다.

  솔제니친은 42세의 나이에 많은 작품을 썼지만 옛 소련에서 거의 출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1961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공식적으로  "개인숭배"와 스탈린을 둘러싼 영웅숭배를 공격하게 되어 검열상태가 완화됐다. 그래서 솔제니친은 시인이자 편집자인 트바르도브스키의 도움으로 『노바 미르』1962년 11월호에 「이반데니소비치의 삶의 하루」를 발표하고 이듬해 1월호에 「마트리오나의 집」과『크레치토브카 역의 사건』을 발표하고 세계적인 작가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1964년 스탈린을 둘러싼 허위적인 "개인숭배"를 공격하던 흐루쇼프가 실각하자, 다시 검열이 강화되어 높이 격찬을 받았던 「이반데니소비치의 삶의 하루」가 1963년 레닌상 후보작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그의 장편소설 『제1서클』과 『암병동』이 소련 작가동맹에 의해 출판이 금지되었지만, 1969년 이들 작품이 서방세계에서 출판되었다. 이어서 그가 쓴 역사소설 『수용도 군도』가 1970년에 발표되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조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리라는 두려움에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 후 『수용소 군도』 제1권이 해외에서 출판되자 1974년 2월에 체포되어 옛 소련으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래서 그는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스위스 취리히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와 버몬트 주에 있는 농장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지냈다. 옛 소련이 해체되자 그는 1994년 조국으로 돌아가 모스크바 서쪽에 있는 다차란 곳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2008년 8월 3일 숨을 거두고 스스로 지정한 수도원에 묻혔다.

  솔제니친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을 중심으로 한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전통을 계승한 작가로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덕적 양심문제를 부각시켜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이룩한 작가이다. 그는 그의 수용소 생활을 주제로 정치적인 억압과 물질적인 탐욕으로 비인간화된 문명을 구원하는 길은 옛 종교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솔제니친은 그의 자전적인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헌신적인 반공주의자이고 반마르크스주의자이기 때문에 서방세계의 많은 민주적 시스템을 선호한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러시아는 천년 동안 권위주의적 질서…… 강력한 도덕적인 바탕…… 전통적인 기독교주의적이고 정신적인 권위주의를 회고했다. 1978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의 <찢어진 세계>라는 연설에서 그는 서방세계의 민주주의의 '군거(群居)본능'과 '집단 표준 수용의 필요성', '웰빙'과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에 대한 강조,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민주주의란 구실로 승리하게 하는 정신적인 고갈' 상태를 비난했다. 여기서 그는 다시 소설에 깊이 침윤되어 있는 고통을 통한 정화(淨化)에 관한 주제로 되돌아가서 "우리는 서구적인 경험에 앞서 정신적인 수련을 거쳤다.'고 말하며, "인생의 복잡성과 극심한 압박이 표준화된 서구적인 '웰빙'보다 더욱 강하고 깊으며 보다 흥미로운 인성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솔제니친은 수용소 생활을 바탕으로 중후한 역사적인 주체를 담은 소설을 썼지만, 또 아름다운 서정적인 산문을 적지 않게 썼다. 여기 번역 소개한 산문은 짤막하지만, 탁월한 수필로서 문학 향기로 넘쳐나고 있다. 하나의 풍경과 하나의 사물의 현상을 보고 그 속에 숨은 진실을 탁월한 이미지와 서정적 언어를 통해서 아름답게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짧은 글이지만, 장편소설이 담아내려고 하는 주제를 시적으로 압축해서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이 산문들은 우리들이 알고 있지만 표현하지 못한 삶의 진실과 경험과 우주의 숨은 현상들을 새로이 밝혀주고 있다. 그의 산문이 이렇게 우리들에게 깨달음의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 진부한 일상적인 풍경만을 이야기하는 수필이 아니라, 평범한 현상 가운데서도 특별한, 즉 보편적이지만 신비로운 경험과 빛은 물론, 삶의 존재방식에 대한 물음과 함께 주제를 새롭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이 쓴「호흡」은 모두 다 느끼고 경험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이 될 수 있고, 「물에 비친 영상」역시 누구나 느끼는 삶의 현상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만이 발견한 탁월한 은유적 이미지로 미학적 충격을 주고 있다.「모닥불과 개미」는 짧은 소묘이지만 헤밍웨이가 쓴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장면 못지 않게 실존주의적인 인간 상황에 대한 탁월한 상징이 되고 있다.「산에서 맞은 뇌우(雷雨)」는 우리들로 하여금 원시적인 창조과정과 현재적인 상황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오카 강변을 여행하면서」는 사색이 깃든 옛날의 종교적인 삶과 파괴적인 현대인의 황폐한 삶의 현실을 비교하고 있다. 

 

   ※ 블로그 후기/  솔제니친의 서정적 산문 <호흡> <물에 비친 영상> <모닥불과 개미> <산에서 맞은 뇌우(雷雨)> <오카 강변을 여행하면서> 다섯 편 모두[에세이 한 편]파트에 수록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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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바다』 2016-가을<이태동/ 해외 수필 읽기>에서

   * 이태동/ 문학평론가, 평론집 『나목의 꿈』『한국 현대시의 실체』등, 수필집『살아 있는 날의 축복』『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