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추아어에 갇히다
김영찬
나는 쓸데없이 케추아어를 배워야겠다
무용지물 미궁에 빠진 케추아어 문법을 우루밤바 계곡
우르르 천둥치는 물길에 쏟아
통음해야겠다
결승문자 하나 흔적 없이 그런데 잉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어절을 찾는다
새들이 기를 쓰고 페루에 가서 죽는 이유는
케추아어 모음을 제대로 발성해보고 깃털 떨쳐내려는 것
티티카카 호반에서 임종을 맞은 새들은
까닭 없는 조분석을
하얗게 남긴다
나는 어문의 뿌리를 캐러 지구의 옴파로스, 쿠스코에
배낭 메고 남았다
자모조차 흐려진 케추아어
뜻 모를 주술, 주문을 외워 잉카의 심장에 손 얹어봐야겠다
태양신이 번쩍 놀라
잉카의 후손들을 소집하겠지
건장한 옛 제국의 무사들이 칼 차고 내려와
날갯죽지 퇴화한 내 양쪽 겨드랑이에
독수리 문양을 문신하겠지
나는 지상에 없는 보조날개를 단다
마추픽추 봉우리를 섭렵한 크고 우람한 콘도르 날개로
태양의 중심부를 향한 똑바른
직선비행
우여곡절 끝에 모국어의 장애를 훌쩍 넘었다 싶은 순간
어수룩한 문맥 속에 살아남는 나는
원음의 편린을 부리로 모아
타액 묻은 어간 그대로 본래의 자리에
되돌려 놓는다
나는 정말 쓰잘데기 없는 문법에 이끌려 페루의 마법사를 자초
폐허의 유적에 갇힌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11.1~2월호 <우리시의 현장>에서
* 김영찬/ 충남 연기 출생, 2003년『정신과표현』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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