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바람에게/ 이병률

검지 정숙자 2011. 1. 9. 02:37

 

   바람에게


     이병률



  별에게 감히 말을 건 것을 용서해 다오

  색깔을 잘못 사용한 죄를 씻어가 다오


  말을 타고 달리는 구름이여

  이 가을 하늘의 지붕이여

  나를 심판해 다오


  바람의 감정을, 혁명의 마디를 끊어 다오


  아침 녘 황금빛으로 울먹이는 서리들을

  모두 지워 다오


  나에게 있는 것들을 용서해 다오

  내가 입을 옷까지도 내가 발설한 비밀까지도


  다리를 건널 수 없게

  붉은 열매를 먹을 수 없게 힘을 가져가 다오


  부디 다시 태어나게 하거나

  다시 태어나지 않게 해 다오


  담장을 이념을 낙서들을 끊어다오

  이 몸속의 황금을 빼내어 가 다오


  당신의 발자국이 찍힌 자작나무 허리들을 모두 베어 다오

  나와 당신이

  죽도록 죽도록 가까웠던 기적들을 마침내 거둬 가 다오


  

  *계간《님》2010-겨울호, 초대시

  *이병률/ 충북 제천 출생, 1995년 <한국일보>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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