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게
이병률
별에게 감히 말을 건 것을 용서해 다오
색깔을 잘못 사용한 죄를 씻어가 다오
말을 타고 달리는 구름이여
이 가을 하늘의 지붕이여
나를 심판해 다오
바람의 감정을, 혁명의 마디를 끊어 다오
아침 녘 황금빛으로 울먹이는 서리들을
모두 지워 다오
나에게 있는 것들을 용서해 다오
내가 입을 옷까지도 내가 발설한 비밀까지도
다리를 건널 수 없게
붉은 열매를 먹을 수 없게 힘을 가져가 다오
부디 다시 태어나게 하거나
다시 태어나지 않게 해 다오
담장을 이념을 낙서들을 끊어다오
이 몸속의 황금을 빼내어 가 다오
당신의 발자국이 찍힌 자작나무 허리들을 모두 베어 다오
나와 당신이
죽도록 죽도록 가까웠던 기적들을 마침내 거둬 가 다오
*계간《님》2010-겨울호, 초대시
*이병률/ 충북 제천 출생, 1995년 <한국일보>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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