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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가 훌륭한 시인가/ 오세영

검지 정숙자 2016. 9. 15. 22:43

 

 

    『작가세계』2016-가을호 시인산책 나의 시론 '내 시의 좌표'(발췌)

 

 

    어떤 시가 훌륭한 시인가

 

    오세영

 

 

  시인이라면 그 어떤 사람이라도 훌륭한 시를 쓰고 싶을 것이다. 실제 시작이 그 같은 결과에 이를지, 이르지 못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아니 대부분은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하나의 이념태(理念態)로서 그가 훌륭하다고 믿는 어떤 시적 모델을 마음속에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는 그 같은 이념태로서의 모델을 실제 작품으로 현실화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그가 훌륭하다고 믿는 그만의 이념태에 모든 시인이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문학의 보편적 규범이라는 것이 있어 그것이 그에 꼭 들어맞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심지어는 한 시인이 주장하는 '훌륭한 시의 모델'이 다른 시인에겐 경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확신하고 높이 평가하는 시가 알고 보니 범인류적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혹은 그 결과가 어떠하든 시인은 자기가 이상으로 여기는 어떤 훌륭한 시의 전범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시를 쓴다. 그리고 그것을      타인이 인정하든  인정하지든      훌륭한 시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것은 플라톤의 경우 '이데아와 현상'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그 훌륭한 시란 어떤 시를 가리키는 말인가. 나 역시 모든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보편적 광점으로부터      물론 내 자신은 그것이 보편적이라고 믿지만      벗어나 있는 것이든 아니든 이렇게 생각한다.

  첫째,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그렇다. 내게 있어서 감동이란 예술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물론 '감동'이란 게 무엇인지, 또 어떤 작품이 감동을 주는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고 따라서 많은 논쟁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든 여기서 나는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 '감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사실 이 글이 무슨 미학이나 철학 논문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용어에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다그치는 독자가 있다면 나는 일단 이렇게 말해두겠다. '한순간의 정서적 · 지적 충격과 깨우침을 통해 우리의 삶을 질적으로 한 단계 향상시키는 어떤 힘', 그것이 곧 감동이라고……,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시의 경우에도 '감동'보다 문제성을 추구하는 데 목적을 둔 시작(詩作)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대부분의 실험시 혹은 전위시의 창작이 그러하다. 물론 나는 예술이 어떤 문제성에 집착해 상대적으로 감동을 소홀히 하는 행위를 비난하거나 부정할 의도는 없다.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그들의 선구자적 소명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같은 목적에서 쓰인 실험시들에 감동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이상(李箱)의 시를 읽고 그 누가 쉽게 감동을 받을 것인가. 그의 시에 지적 통찰이나 호기심이 충만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정서적 충격이나 전율 같은 것은 거의 없지 않은가. 감동      보편적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일단 시가 이해되어야 하는데      이상의 시는 너무 난해하지 않은가? 게다가 엄밀히 따지자면 '지적 통찰'이나 지적 호기심은 그 본질이 본디 예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과학(학문)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내 사적인 문학관으로는 내가 이상을, 문제시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시인의 반열에 올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 실천에 있어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쓸 것이냐 혹은 문제성을 제기하는 작품을 쓸 것이냐의 선택에 어떤 옳고 그름의 객관적인 가치평가가 있을 수 없다. 인간 발전에 있어서 양자 모두 공히 필요한 덕목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시인 각자의 감성, 취향, 인생관, 문학관 등에 따를 문제이기도 하다. 어떻든 지금까지 내 경우는 문제성보다 감동을 추구하는 작품들을 써 왔던 것이 사실이고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다.

  둘째, 훌륭하고 가치 있는 상상력의 토대 위에서 쓰여진 시이다. 왜냐하면 모든 과학적 사고는 이성의 활동에 기대고 있으나 이에 반해 모든 예술적 사고는 상상력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 또한 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상력이 빈곤하거나 아예 그 자체가 없는 문학작품은 문학적 수준이 저열하거나 순문학(belles letters) 작품이 아예 아니다. (예컨대 지난 운동권 시절, 시류에 편승한 대학교수, 평론가들이 외치던 바 "문학은 체험이다"라는 주장에 근거해서 쓰는 시, 물론 체험도 문학의 소중한 자산이기는 하다. 그러나 문학작품은 체험이라기보다는 상상력에 의해서 쓰인다. 체험은 다만 상상력의 발상에 부분적으로 기여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상력이 훌륭한 상상력인가. 나는 수년 전 어떤 지면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훌륭한 시는 훌륭한 상상력으로 쓰여진 시라고 말할 수 있다. 훌륭한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참신하면서도 독창적인 상상력을 일컫는 말이다. 인간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데 기여하는 상상력을 일컫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끼도록 만드는 상상력을 일컫는 것이다. 정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주는 상상력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상력이 거의 없는 시, 상상력이 있다 하더라도 진부하고 통속적인 시, 그 상상력이 인간의 삶을 병들게 하는 시, 그 상상력이 혐오감이나 증오심을 일깨우는 시, 그 상상력이 자충수를 두는 시들을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세영, 「상상력과 체험」, 『시의 길 시인의 길』, 시와시학사, 2002.

 

  셋째, 부분적 진실이 아닌 총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시. 인간의 모든 가치 있는 정신(의식)활동은 필연적으로 이 세계 혹은 삶에 대하여 어떤 진실을 추구하게 된다. 고도의 정신적 산물을 생산해 내는 시인의 경우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추구하는 진실 혹은 진리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분적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총체적인 것이다. 전자는 전체 구성의 한 부분에 관여하는 까닭에 객관적, 논리적, 보편적이며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 이에 비해서 후자는 전체를 직접 대면하며 전체에 관여하는 까닭에 주관적, 직관적이며 감성의 지배를 받는다. (오세영, 「시란 무엇인가」, 『시론』, 서정시학사, 2015.

   가령 사물이란 공간적으로 항상 우리들의 시선이 가고 있는 한 면(面)만 존재하는 것 같지만 기실 그 뒤에 후면이라는 것이 있으며, 시간적으로 현재에 존재하는 것 같지만(생-生) 언젠가는 소멸(사-死)하게 마련이다. 즉 이 세계, 혹은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사물이란 비록 부분적으로는 앞면과 현재밖에 없는 것 같지만      그래서 논리적으로 보인지만      총체적으로는 앞과 뒤, 생성(생)과 소멸(사)이라는 상호 모순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자에 관여하는 진실을 과학, 후자를 추구하는 진실을 시라고 한다. 이 같은 문학관을 가진 나라면 당연히 모순의 진실에 토대를 둔 시작품을 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내 시가 다양한 역설과 아이러니를 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떻든 나는 지금까지 1,000여 편의 시작품을 써왔으나 그중에서도 이상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것들을 훌륭한 시라 믿고 있다. 물론 그 결과가 과연 그 같은 나의 의도를 충분히 구체화했는지는 내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것은 오로지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이 된다면     주제넘게도     선학(先學)들 또한 그렇지 않았던가 하는 점이다. 우리 근대 시사에서 위대하다고 추앙받는 시인들을 한번 편견 없이살펴보자. 김소월, 만해, 백석, 윤동주 등도 그들의 전체 작품들 가운데서 제대로 된 작품을 과연 몇 편이나 남겼던가? 5편, 혹은 10편?

  한 생애의 전체 시작(詩作)에서     비록 그 대부분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남겨진 단 한두 편의 위대한 작품으로 위대해지는 것이 시인의 숙명 아니던가? ▩

 

   (내 시의 좌표 / 1. 어찌해서 시인이 되었는가 / 2.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 3. 어떤 시가 훌륭한 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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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세계』2016-가을호 <시인산책 , 나의 시론>에서

   * 오세영/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1968년 『현대문학』에 「잠깨는 추상(抽象)」외 1편으로 추천 완료, 시집 『반란하는 빛』『바람의 아들들     동물시초』외 다수, 학술서『한국낭만주의 시 연구』『문이란 무엇인가』외 다수, 평론집『현대시와 실천비평』『변혁기의 한국현대시』외 다수,  번역시집『신의 하늘에도 어둠은 있다』『밤하늘의 바둑판』외 다수, 소월시문학상, 불교문학상, 김준오시학상 외 다수 수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 수훈,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