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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채식주의자』「채식주의자」(발췌)/ 한강

검지 정숙자 2016. 9. 11. 20:52

 

 

    <한국인 최초,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

 

 

    『채식주의자』「채식주의자」(발췌)

 

       한 강

 

 

  p. 52)

  한 뒤 그녀를 들쳐업었다.

  "자네는 빨리 내려가 시동 걸어!"

  나는 더듬더듬 구두를 찾았다. 짝이 맞지 않아, 두 번을 바

꿔 신은 뒤에야 현관문을 열고 나갈 수 있었다.

 

          *

 

  …… 내 다리를 물어뜯은 개가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묶이고 있

어. 그 개의 꼬리털을 태워 종아리의 상처에 붙이고, 그 위로 붕대

를 친친 감고, 아홉 살의 나는 대문간에 나가 서 있어. 무더운 여름

날이야. 가만히 있어도 땀이 뻘뻘 흘러내려. 개도 붉은 혓바닥을

턱까지 늘어뜨리고 숨을 몰아쉬고 있어. 나보다 몸집이 큰, 잘 생

흰 개야. 주인집 딸을 물어뜯기 전까진 영리하다고 동네에 소

문났던 녀석이었지.

  아버지는 녀석을 나무에 매달아 불에 그슬리면서 두들겨 패지

않을 거라고 했어.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

가 들었대. 오토바이의 시동이 걸리고, 아버지는 달리기 시작해.

개도 함께 달려. 동네를 두 바퀴, 세 바퀴, 같은 길로 돌아. 나는

꼼짝 않고 문간에 서서 점점 지쳐가는, 헐떡이며 눈을 희번덕이는

흰둥이를 보고 있어. 번쩍이는 녀석의 눈과 마주칠 때마다 난 더

욱 눈을 부릅떠.

  나쁜 놈의 개, 나를 물어?

 

   p. 53)

  다섯 바퀴째 돌자 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어. 줄에 걸린 목에

서 피가 흘러. 목이 아파 낑낑대며, 개는 질질 끌리며 달려. 여섯

바퀴째, 개는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 목에서도, 입에서도 피가

흘러. 거품 섞인 피, 번쩍이는 두 눈을 나는 꼿꼿이 서서 지켜봐.

일곱 바퀴째 나타날 녀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축 늘어진 녀석을

오토바이 뒤에 실은 아버지가 보여. 녀석의 덜렁거리는 네 다리,

눈꺼풀이 열린, 핏물이 고인 눈을 나는 보고 있어.

  그날 저녁 우리집에선 잔치가 벌어졌어. 시장 골목의 알 만한

아저씨들이 다 모였어. 개에 물린 상처가 나으려면 먹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한입을 떠 넣었지. 아니, 사실은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다

먹었어. 들깨 냄새가 다 덮지 못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어. 국밥 위

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

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

 

  여자들은 놀란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집에 남고, 처남은 뒤

이어 혼절한 장모를 돌보고, 동서와 내가 가까운 병원 응급실

로 아내를 날랐다. 응급상황을 넘긴 아내가 이인용 일반병실

로 옮겨지자 그제야 두  남자 모두 피가 말라 꾸덕꾸덕해진 옷

을 의식했다.

  오른팔에 링거바늘을 꽂은 채 아내는 잠들어 있었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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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작소설『채식주의자』「채식주의자」에서/ 2007. 10. 30 초판 1쇄 / 2016.6.20. 초판 36쇄 <(주)창비> 발행

  * 한 강/ 1970년 광주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93년 계간『문학과사회』겨울호에 시, 1994년 《서울신문》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당선. 소설집 『여수의 사랑』『내 여자의 열매』『노랑무늬영원』. 장편소설『검은 사슴』『그대의 차가운 손』『바람이 분다, 가라』『희랍어 시간』『소년이 온다』. 산문집『사랑과, 사랑이 둘러싼 것들』『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등.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