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38 방황/ 최승호

검지 정숙자 2011. 1. 29. 02:04

  38 방황


    최승호



  방황에 필요한 사나운 바람, 숨죽였던 낮의 광기를 터뜨리며 울부짖고 외치고 그러다 죽어도 좋다면 폭주족은 질주해야 한다.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사막의 늑대들처럼 마구 울부짖어야 한다. 그럴려면 오토바이가 있어야 한다.


 38-1


  호숫가의 왕국 누란(樓蘭)이 멸망한 뒤에, 오랜 세월 사막을 방황하다 사라진 호수가 있었다. 


 38-2


  느닷없이 누런 흙먼지를 일으키며 오토바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헛것인가, 사막의 도적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던 오토바이는 빠르게 우리 곁을 지나갔다. 그는 왜 고비 사막 한복판을 혼자 달리고 있었을까. 사막에서 방황하는 자인가? 황금을 찾는 자인가? 그는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우리를 뒤로하고 다시 누런 흙먼지 속으로 사라져갔다.


 38-3


  한 남자가 방에서 자전거를 탄다

  바퀴 없는 자전거

  가지 않는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돌린다

  근육을 만들기 위해



  *시집『아메바』에서/ 초판발행 2011.1.20 (주)문학동네 펴냄

  *최승호/ 강원도 춘천 출생, 197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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