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비문증(飛蚊症)/ 강병길

검지 정숙자 2011. 1. 28. 03:02

   비문증(飛蚊症)

    -도배일기 39


     강병길



  벽은 갈라진다

  벽은 틈을 내며 벌어진다

  버틸 수 있을 만큼만 견디고 허물어지게 된다

  정직한 균열 사이로 버려진 햇살에 눈을 다친다

  해는 나를 뚫고 지나갔으나

  나는 해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 후로 검게 탄 겨자씨

  혹은 부석사 안양루 공포 빈 부처의 잔상처럼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비문을 비밀스런 글자로 이해하는 나는

  해석할 수 없는 글씨를 읽고 또 읽는다

  눈을 뜨면 허공을 떠다니는 거추장스러운 현상을

  무심하게 읽어간다

 


  *시집 『도배일기』에서/ 도서출판 지혜 펴냄

  *강병길/ 경기도 이천 출생, ‘사람과 시’, ‘중원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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