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移葬)
박수중
시간이 그대로 머물러 있더군요
봉분을 조심스레 헐어 내려가
가랑잎처럼 부식(腐植)된 관 뚜껑에 닿았을 때
빛이 무너지듯 현기증이 엄습했어요
사십 년 세월이 갇혀 있었어요
아들이 청년에서 할아버지가 되는 동안
당신은 당신만의 공간 속에 사십 대로 존재하셨네요
살과 머리카락과 수의(壽衣)는
아주 고운 먼지가 되었고요
두개골에서 발가락뼈까지 누운 자세가
절제(節製)된 침묵처럼 가지런했어요
당신의 치아는 헤어질 때와 변함없이
윗송곳니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어요
지나온 세상의 질풍노도(疾風怒濤)가
이곳에선 지극한 고요였네요
넓은 한지에 수습한 뼈를
죽음과 무(無)의 퍼즐을 풀 듯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정렬하는 것을 지켜봤어요
옆에서 당신이 가만히 제 손을 잡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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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꿈을 자르다』에서/ 2010.11.15 <연인M&B> 펴냄
*박수중/ 황해도 연안 출생,『문학시대』75회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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