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스프링 노트/ 길상호

검지 정숙자 2011. 1. 29. 02:24

   스프링 노트


    길상호



  반쪽 몸의 사내는

  침대에 누워 주문을 한다

  딱딱해진 말의 언어 말고

  신경이 살아 있는 문자 언어로

  머리맡 노트에 적는다

  -올해 봄은 냄새가 어떤가?

  여보, 목련 좀 꺾어다 줘


  주문서를 받아든 아내가 급히

  목련 사발을 들고 온다

  봄맛에 빠져 있는

  반신불수 사내를 엎어놓고

  물수건으로 등을 닦는다

  가운데 박혀 있는 등뼈가

  오래 쓴 스프링처럼 구부러졌다


  사용한 페이지에 비해

  남은 페이지가 너무 얇은 노트

  -올해는 냄새가 더 줄었네

  그세 거뭇해진 목련 꽃잎처럼

  그의 스프링 노트 한 장

  또 과거 쪽으로 넘어간다



  * 시집『눈의 심장을 받았네』에서/ 2010 9.27 (주)실천문학 펴냄

  * 길상호/ 충남 논산 출생, 2001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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