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울어주기를 원치 않는다
정숙자
넘어서라… 넘어서라… 되짚는다
슬픔은
나를
넘어서라고
모서리 모서리 굴리며 돌아온 태풍, 그 억센 덩굴들 휘
돌고 간 뒤
밤새워 노 젓는
잎새들에게
슬픔은
빠져나가라… 빠져나가라… 귀띔한다
절대로
나에게 걸려들어선 안 된다고
겨우 매달린 이파리마다 노상 바람이 진을 치지만 슬픔
은 내 무게에 젖어 있어라 잡지 않는다. 나를 위해 울어 달
라 긁지 않는다. 조용히 들여다보면 내 안에도 푸른 문 하
나는 있어. 그 창을 열고 밝은 데로 너른 길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쓰다듬는다.
포플러 그가 세운 하늘 속에는 그만의 경전이 피어오
른다. 슬픔을 슬픔으로 키우지 않고, 아픔을 아픔으로 끓
이지 않고 어떻게든 아울러 어울린 키를 우리말 사전에서
는 '적응'이라 부화시켰지. 번개가 귀를 스쳐도 놀라지 마
라… 놀라지 마라… 끌어안는다
나에게서 떠나
나에게서 얻은 틈으로
나를 돌아보지 말고
그렇다고 아주 잊지는 말고
태풍이 나를 관통했었다 추억할 수 있을 때까지
꽃 틔워라… 길 깨워라… 땅속
깊숙이 방문한 겨울
숭고한 노래 온몸에 새긴
말매미도 우화하라… 올려 보낸다
-『이상』2016-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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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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