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슬픔은 울어주기를 원치 않는다/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6. 9. 3. 13:19

 

 

      슬픔은 울어주기를 원치 않는다

 

     정숙자

 

 

   넘어서라 넘어서라 되짚는다

   슬픔은

   나를

   넘어서라고

 

   모서리 모서리 굴리며 돌아온 태풍, 그 억센 덩굴들 휘

돌고 간 뒤

 

   밤새워 노 젓는

   잎새들에게

   슬픔은

   빠져나가라 빠져나가라 귀띔한다

   절대로

   나에게 걸려들어선 안 된다고

 

   겨우 매달린 이파리마다 노상 바람이 진을 치지만 슬픔

은 내 무게에 젖어 있어라 잡지 않는다. 나를 위해 울어 달

라 긁지 않는다. 조용히 들여다보면 내 안에도 푸른 문 하

나는 있어. 그 창을 열고 밝은 데로 너른 길로 나아가

나아가라 쓰다듬는다.

 

   포플러 그가 세운 하늘 속에는 그만의 경전이 피어오

른다. 슬픔을 슬픔으로 키우지 않고, 아픔을 아픔으로 끓

이지 않고 어떻게든 아울러 어울린 키를 우리말 사전에서

는 '적응'이라 부화시켰지. 번개가 귀를 스쳐도 놀라지

놀라지 마라 끌어안는다

 

   나에게서 떠나

   나에게서 얻은 틈으로

   나를 돌아보지 말고

   그렇다고 아주 잊지는 말고

 

   태풍이 나를 관통했었다 추억할 수 있을 때까지

 

   꽃 틔워라 길 깨워라 땅속

   깊숙이 방문한 겨울

   숭고한 노래 온몸에 새긴

   말매미도 우화하라 올려 보낸다

     -『이상』2016-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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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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