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렁쇠
정겸
어릴 적 아버지와 나 그리고 어머니 굴렁쇠를 굴린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꼬불꼬불 좁은 논두렁길을
요리조리 달려가며 잘도 굴렸다
어머니는 굴 바탕이 있는 바닷길을
거센 해풍 맞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목표물을 정조준하여 제시간에 도착하였다
나는 굴렁쇠를 굴리며 긴 강을 향해 달렸다
엉겅퀴 우거진 들길을 따라
황토먼지 날리는 굴곡진 비포장도로를 조심스럽게 굴리며 갔다
제멋대로 튕겨져 나갈 때마다
굴렁대로 좌우 조정하며 달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탄력 받는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자 통제선을 이탈하였다
이제는 굴리는 것이 아니라
굴렁쇠의 조정을 받으며 노예처럼 따라가고 있다
덜컥, 돌부리에 부딪히며 멈춰 섰다
어느새 뒤따라온 아버지 소리 질렀다
“얘야, 하늘 향해 고개 너무 쳐들었구나
굴렁쇠에서 눈 떼지 말고 고개 숙이고 허리를 좀 더 굽혀 굴려야지”
어머니 아버지 평생을 굽혀 살았다
*《예술가》2010-겨울호, 신작시
*정겸/ 화성 출생, 2003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방울/ 나석중 (0) | 2011.01.08 |
---|---|
밥의 힘/ 김상미 (0) | 2011.01.08 |
어떻씨와 함께 하는 11월 저녁/ 정채원 (0) | 2011.01.07 |
밖에는 비가 오나요/ 정채원 (0) | 2011.01.07 |
새의 눈으로 세상이 희망을 바라보다 / 글, 김장호(시인) (0) | 2011.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