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텅 빈 힘/ 조창환

검지 정숙자 2015. 10. 17. 15:32

 

 

    텅 빈 힘

 

    조창환

 

 

  바다 저편에 숨어 있던 새벽하늘은

  허공과 구름에 싸인 이상한 힘의 예감과

  서서히 겹쳐지면서 침착하고 위엄있게

  텅 비워간다

 

  텅 빈 힘은

  두렵고 송구스럽고 깊다

 

  그러나

  텅 빈 힘에는

  기다란 한쪽 다리로만 서 있는 기품 있는

  백로와 같은 불안한 존재의 비애가 있다

 

  텅 빈 힘에는

  고삐를 잡아끌자 큰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이 고이던 그날의 황소와도 같은

  마주보기 죄스러운 억눌린 슬픔이 있다

 

  얽어맨 멍에와 고삐와 굴레를 지닌

  하루를 앞에 두고 한없이 망설이는

  새벽을 보라

 

  새벽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저토록 오래 망설이기만 하는 까닭은

  텅 빈 힘이 제 운명을 미리 알기 때문이다

 

 

 *『시와 표현』2015-10월호 <신작시 광장>에서

 *  조창환/ 1973년『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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