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오동꽃/ 이홍섭

검지 정숙자 2015. 10. 17. 15:49

 

 『시와 표현』2015-10월호 / 기획특집 <쓰고 싶은 시>에서 발췌

 

 

    오동꽃

 

    이홍섭

 

 

  오동꽃이 왔다

  텅 빈 눈 속에

 

  이 세상 울음을 다 듣는다는 관음보살처럼

  그 슬픈 천 개의 손처럼

  가지마다 촛대를 받치고 섰는 오동나무

 

  오랜 시간 이 신전 밑을 지나갔지만

  한 번도 불을 붙인 적 없었으니

 

  사방으로 날아가는 장작처럼

  그 덧없는 도끼질처럼

  나는 바다로, 깊은 산 속으로 떠돌았다

 

  내 울음을 내가 들을 수는 없는 일

  自己를 붙잡고 운 뒤에야

  울음이 제 몸을 텅 텅 비우고 난 뒤에야

  쇠북처럼 울음은 비로소 가두어지고

 

  먼 곳에서 오동꽃이 왔다

  갸륵한 신전이 불을 밝혔으니

  너는 오래오래 울리라

                                      -전문-

 

 

  '쇠북'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쇠로 된 북' 즉 '종'을 이르는 말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일반적으로 종이라 여기는 둥근 종을 '범종'으로, 북처럼 생긴 작은 종을 '쇠북'으로 각각 구별하여 부른다.

  절밥 축내는 것을 그만 두고 세간의 밥을 먹기 시작했을 무렵, 어느날 갑자기 '쇠북'이라는 시어가 떠올랐다. 산사에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떠오르지 않은 단어였는데 신기할 뿐이었다. 내가 왜 산으로 올라갔는지, 또 그 이전 사춘기 시절에는 왜 집을 떠나 바닷가를 헤매고 다녔는지 해명을 하고 싶었다. 해명이 될 수 있을까.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다만 알 수 없을 뿐이다. 나는 그냥 위와 같은 시를 썼다.

 

 

  이홍섭/ 1990년『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 『터미널』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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