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수색(水色)/ 박은정

검지 정숙자 2015. 10. 9. 21:25

 

 

   수색(水色)

 

   박은정

 

 

 

  유리병 속에 목소리들.

 

  텅 빈 공중을 울리며 달아나고 있었지 푸른색 이마를 유리벽에 박으

며. 무거운 피가 뚝뚝 떨어질 때까지.

 

  이곳에 남은 것은 지치고 늙은 성정들뿐.

 

  동전을 하나씩 흘리며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동안. 우리에게 남

은 건 보잘 것 없는 슬픔뿐.

 

  내가 죽으면 박제를 해줘. 슬픔도 기쁨도 없이 당신의 방에서 정적만

을 먹고 살찌도록.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떠나지 못하는 자들과 돌아오지 않는 자들 사

이에서.

 

  가을은 지겹도록 계속되었다.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가리키던 동생은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유리병이 굴러간다. 굴러간다. 굴러간다.

 

  이곳에 물이 마르고 있어

  산 사람의 이름에 빨간 줄을 그으며.

 

 

*『시작』2015- 여름, 가을호 합본 <신작시>에서

* 박은정/ 2011년『시인세계』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