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하나 외우며
박소원
발가락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보고 싶다 용아
땅바닥에 헌 운동화 끝으로
이름을 썼다 쓱쓱 지운다
정류장 한 귀퉁이 움푹 파이고
머리 위 백일홍 붉은 꽃이 흔들린다
꿈속에서도 올 수 없는
이승의 이정표 아래에서
지우지 못한 이름 하나 이렇게 외우며
나는 턱없이 늙어버린다
종점에서 종점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장미꽃 울타리가 있는 붉은 지붕을
지나칠 때마다
손가락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용아, 먼지 낀 유리창에 대고
지나가는 허공에 대고 너의 이름을
또박또박 눌러 쓴다
당신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는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서로 낯선 얼굴이 되어서도
허공에서 사라지는 이름 한 송이
아직도 눈이 아프게 환하다
*시집『슬픔만큼 따뜻한 기억이 있을까』에서
2010.10.13 <문학의 전당> 펴냄
*박소원/ 전남 화순 출생, 2004『문학-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