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이름 하나 외우며/ 박소원

검지 정숙자 2010. 12. 29. 00:58

 

   이름 하나 외우며


     박소원



  발가락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보고 싶다 용아

  땅바닥에 헌 운동화 끝으로

  이름을 썼다 쓱쓱 지운다

  정류장 한 귀퉁이 움푹 파이고

  머리 위 백일홍 붉은 꽃이 흔들린다

  꿈속에서도 올 수 없는

  이승의 이정표 아래에서

  지우지 못한 이름 하나 이렇게 외우며

  나는 턱없이 늙어버린다

  종점에서 종점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장미꽃 울타리가 있는 붉은 지붕을

  지나칠 때마다

  손가락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용아, 먼지 낀 유리창에 대고

  지나가는 허공에 대고 너의 이름을

  또박또박 눌러 쓴다

  당신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는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서로 낯선 얼굴이 되어서도

  허공에서 사라지는 이름 한 송이

  아직도 눈이 아프게 환하다

 


  *시집『슬픔만큼 따뜻한 기억이 있을까』에서

              2010.10.13 <문학의 전당> 펴냄

  *박소원/ 전남 화순 출생, 2004『문학-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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