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투석/ 박소원

검지 정숙자 2010. 12. 29. 00:56

 

   투석


    박소원



  때맞추어 시체처럼 굳어지면

  나는 몸속의

  구석구석 낯설고 험한 길을 간다

  낯선 곳으로 가문도 모르는 곳으로

  그곳까지 흘러가면

  배꽃이 만개한 과수원에 머물게 된다

  명치께쯤, 거기에도 길이 뚫리고

  새로운 내가 통하는가

  어머니의 야윈 목을 누르던

  두터운 아버지의 손도 정말

  용서할 것 같다

  병상의 얇은 시트 속에서 두 발이

  새알처럼 따뜻해지고

  파리한 입술이 동백꽃같이 붉어진다

  발톱까지 손톱까지 걸러낸 내가 돌고

  보름에 한 번 보름달이 뜰 때마다

  허공의 투석기 앞에서

  멍, 머엉 비로소 입이 열린다


  오래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시집『슬픔만큼 따뜻한 기억이 있을까』에서

              2010.10.13<문학의 전당>펴냄

 *박소원/ 전남 화순 출생, 2004『문학-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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