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엠포엠』2015-가을호 <포엠포엠에서 본 詩/조풍호 : '샌들 신은 맨드라미꽃' 같은 가정에 보내는 편지_구두의 사랑, 구두의 전쟁>에서 발췌
옥스퍼드구두를 벗어던졌다
한창옥
옥스퍼드구두 뒤축은 실종되었다.
풍선처럼 부풀다 빠지는 헛바람을 탕진한
샌들 신은 맨드라미꽃,
세상은 커피향보다 먼저 증발되었다.
(당돌한 하이힐에 애꿎은 발등만 밟히고
빨강 하이힐은 마구 등짝을 찔러댔다)
앞니 사이가 뜬 백색 하이힐은
허망하게 밤비에 흩뿌려졌다.
오지 않는 환상은 점점 뜬구름이었다.
셔츠단추 앙가슴까지 풀어놓는
미성의 로큰롤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닌
미남배우 알랭 드롱. 리처드 기어도 아닌
헐리웃스타가 대세던 시대에
검은 살갗의 마대 같은 말투, 그 도도함이었다.
어느 순간 옥스퍼드구두를 벗어던졌다.
혼돈의 하이힐이 아닌
솜털구름처럼 사는 거라고
한 꺼풀 두 꺼풀 솜을 탔다.
시큰한 무릎 맞대고 체온을 체온을 나누었다.
-『시와사상』2015-여름호
이 시에는 구두가 세 켤레 나옵니다. 옥스퍼드 구두와 빨간 하이힐, 백색 하이힐이지요. '옥수퍼드 구두'는 끈 달린 단화로 남성들의 정장용 구두입니다. 흔히 킬힐이라 부르는 하이힐은 여성용 구두이지요. 프로이트는 하이힐을 주물성애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여성이 자신에게 페니스가 없다는 인식을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적 환상의 구체화이지요. 두 개의 남근을 장착한다는 의미는 남성과의 강한 대결의식을 상징하는 것이겠죠. (실제로 여성의 하이힐은 위급할 때 '등짝을 찔러댈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남근에 대한 선망과 남근에 대한 혐오가 또각또각 소리에 실려 있는 여인의 걸음걸이의 '도도함' 앞에서 주눅들어본 적이 있는 남성들은 압니다. 여성이라는 '혼돈'의 막막함을…….
이 시의 애매한 시작은 그 도도함들이 무너진- '뒤축이 실종되'고 '앞니'가 나간 구두로 상징되는 여성과 남성, 곧 시적 화자의 교체로 일어납니다. 전반부는 '구두의 뒤축이 실종된' 다시 말해 박목월 시인처럼 세상살이가 힘든 남성이었는데 (당돌한 하이힐'에게 핀잔이난 듣는 조금 못난) '백색 하이힐' ('앞니 사이가 뜬' 표현으로 봐서 역시 도도할 수 없는 상황이나 처지인)이 등장하면서 '검은 살갗의 마대 같은 말투'의 남성을 (환상 속의 남성은 '오지 않은' 채) 무슨 이유에서인지 받아들이는 여성 화자로 바뀌어 있죠. 다시 남성 화자로 바뀌면서 사람이, 좀 애틋한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 조풍호/ 충북 괴산 출생. 199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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