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2015-가을호 <창작의 샘/ 시>에서
모습 없이 환한 모습
조정권
비 오는 밤
본 적 있니?
가로등 아래서 노숙하는 비
그 맡바닥에 밤은
더 큰 허공.
허공의 밑.
시인은 허공을 건축하는 자.
나의 언어는 허공에서는 아직도 망치와 톱일 뿐,
내 친구 흰 구름이 아직 모이지 않아요.
허공 속을 아직도 떠돕니다.
보헤미아
들판 여름하늘 흰 구름 모이면 성당 구조물
흰 구름은 성당.
밤이 되면
내 손은 허공
무늬 없는 벽돌처럼 쌓아올린 거대한 허공은
세상의 지친 걸인들을 문 앞에서 한없이 걸어오게 하지요.
벽 속에 숨겨진 통곡하는 방에 숨어
한없는 울음을 울 수 있는,
아무리 울어도 밖으로 들리지 않는 저 밤의 하늘 들판이
내겐 처녀시가 출혈했던 곳일 거 같다는 생각.
촛불을 켜지 않았어요. 촛불을 들고 있는 언어란
엄마들의 노인네들의 오랜 습관 언어이기에.
시는 상징이 아니라
상징의 무덤일 뿐.
비 오는 날이면
우뚝 우뚝 서서 비맞는
비를 보아라.
비는 혼자 비를 맞는다.
시는 성당 문 앞에서 가설 텐트를 친 빈자들의 무늬라고 생각했어요
내게 시란 무신론 옆에 친 텐트 같은 것.
* 조정권/ 시인. 1949년생, 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시편』『허심송』『하늘이불』『산정묘지』『신성한 숲』『떠도는 몸들』『먹으로 흰꽃을 그리다』『고요로의 초대』『시냇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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