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왜, 백 마리 사슴이 한 마리 치타에게 쫓기는가/ 강서완

검지 정숙자 2015. 9. 12. 12:51

 

 

    왜, 백 마리 사슴이 한 마리 치타에게 쫓기는가

 

     강서완

 

 

  앙칼지게, 허공 한 자락 깨지는 풀밭

  참새 새끼 대여섯 마리가 뱀 한 마리와 사투하고 있다

 

  수백만 년 전부터 전해진 굴욕을 모르는 새끼들, 달밤이면 어미는

 

  쇠박새를 잡아먹는 네펜테스믹스타, 날아가는 제비를 잡아먹는 타

이거피쉬 무용담을 들려줬나보다

 

  사슴, 얼마나 청초한 풀잎인가? 저들은

  뒤처진 동료가 잡아먹혀도 오로지 내달리는 무리들이다

 

  얼룩무늬를 모조한 기린, 뿔 내주고 목숨을 건진 사슴, 치마를 펼

친 공작새, 무더기로 익사한 새떼, 초원을 탈주하려는 토끼에 대해

서도 다수는 침묵한다

 

  누가 과연 그 침묵을 찢을 용기가 있겠니? 저울에 올릴 선지식이

있겠니?

 

  둥지를 침범한 뱀을 그저 내치는 거다 황당한 도적을 혼줄 내는

거다 슬그머니 머리를 내려 돌아서는 뱀의 등에 전신으로 콱콱, 쐐

기를 박는 거다 

 

 

 *『포엠포엠』2015-가을호 <신작시>에서

 * 강서완/ 경기 안성 출생, 2008년『애지』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