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백 마리 사슴이 한 마리 치타에게 쫓기는가
강서완
앙칼지게, 허공 한 자락 깨지는 풀밭
참새 새끼 대여섯 마리가 뱀 한 마리와 사투하고 있다
수백만 년 전부터 전해진 굴욕을 모르는 새끼들, 달밤이면 어미는
쇠박새를 잡아먹는 네펜테스믹스타, 날아가는 제비를 잡아먹는 타
이거피쉬 무용담을 들려줬나보다
사슴, 얼마나 청초한 풀잎인가? 저들은
뒤처진 동료가 잡아먹혀도 오로지 내달리는 무리들이다
얼룩무늬를 모조한 기린, 뿔 내주고 목숨을 건진 사슴, 치마를 펼
친 공작새, 무더기로 익사한 새떼, 초원을 탈주하려는 토끼에 대해
서도 다수는 침묵한다
누가 과연 그 침묵을 찢을 용기가 있겠니? 저울에 올릴 선지식이
있겠니?
둥지를 침범한 뱀을 그저 내치는 거다 황당한 도적을 혼줄 내는
거다 슬그머니 머리를 내려 돌아서는 뱀의 등에 전신으로 콱콱, 쐐
기를 박는 거다
*『포엠포엠』2015-가을호 <신작시>에서
* 강서완/ 경기 안성 출생, 2008년『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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