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이유
유정이
그는 진정 후회하는 감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왜 처음부터 절단된 골목을 집어 올렸던 거지
기호에 따라 나눌 때
우리가 가진 건
울음의 일부
설움의 외부라고 해도 좋다
아버지의 머리칼이 뜯겨 나올 때마다
울음의 가치는 놀랄 만큼 증대되었다
나는 왜 아직도 구태의연한 의자처럼
아버지를 말하는 거지 이렇게 계속 살아남아
파충류처럼 뒷다리 접는 자세를 연습한다면
유사시에는 어떤 경계도 펄쩍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영토가 새로울 것인가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은
이생을 모두 건너야 가능한 일이다
아침은 날마다 새롭게 재편되었으나
저녁의 방향으로 어깨를 기울이는 골목은
등(燈)을 놓치고 빛을 놓친
빛을 놓친 후 등을 놓친 가로등처럼 조용하다
나는 아직 골목에 있으며
아버지와 내가 굳이 소비한 감정은 치외법권의 일,
여기를 벗어나려면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다만 일고 있을 뿐이다
*『문예바다』2015-가을호 <신작 시>에서
* 유정이/ 1993년『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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