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 노인의 슬픔
박문희
내가 왜 이 글을 써야 하는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은 남편과 함께 죽을 때까지 오래오래 살자고 28년 전 정성들여 건축했었다. 이웃들과도 무난하게 지냈으며 서로서로 숟가락 수를 알 정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을 먼저 보내고 평생 함께 모시던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를 이어서 차례로 보냈다. 자녀들은 출가하여 멀리 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독거 노인으로 남게 되었다. 정말 내 평생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너무 외롭고 슬퍼 옆에 내색하기도 싫었다. 우울증 치료를 2년 이상 받아가며 겨우겨우 버티면서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어느덧 십 년이라는 세월을 이 집에서 혼자 살게 되었다.
금년 늦봄 어느 날이었다. 옆집 부인이 찾아와서 "언니, 우리 집 좋게 지을 거니까 이번 기회에 노후된 담을 헐어버리고 담 없이 살면 어때요."라고 말했다. 나는 혼자 살고 있으니 담마저 없으면 불안할 것 같아서 거절하였다. 그러나 하도 열심히 나에게 애원을 하여서 담을 헐도록 하였더니 그것이 이렇게 나를 장기간 괴롭힐 줄은 몰랐다.
어느 날 외출 후 돌아와 보니 우리 집 정원과 지붕 위에 온통 아시바(빌딩 건축 때 보는 발판) 파이프와 천막들이 설치되어 내가 사는 방까지 어두컴컴하게 변해 있었다. 한마디로 기겁을 한 정도로 황당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 집과 우리 집 담을 헐어버리자고 말했던 그 집 주인의 의도가 드러남과 동시에, 사전에 정직하게 양해를 구한다는 말 한마디 없었던 것을 생각하니 그 집 주인의 비열한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혼자 사는 나에게는 잔인하게까지 느껴졌다.
이어서 내 마음에 스스로 일어나는 생각은 내가 혼자 사는 늙은이라고 이렇게 기만당하고 무시당하는가 하는 서러움이었다. 그래도 사반세기를 이웃으로 살아왔는데, 내가 이렇게 외롭게 되니 그냥 무시(분명히 "無視"였다)해 버린다는 생각을 하니 인간에 대한 신뢰까지 사라지면서 무서운 생각이 들고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늦봄에 시작한 그 집 건축공사는 여름으로 가을로 이어지고, 나는 여름 내내 정원도 잃어버리고 어두워진 방에서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급기야는 온몸에 두드러기까지 발생하여 응급실로 실려 가기까지 하였다.
순진하게 담을 헐어준 자책과 어리석음에 가슴앓이를 하였으나 실감나는 것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이전에 많이 들어보았던 시쳇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집 짓는 것을 물리적으로 방해할 수도 없고 가택무단 침입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이유는 바로 나의 정서가 그냥 허락을 하지 않아서였다. 몇 개월을 시달리다 할 수 없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서 상담하였더니 건축주에게 요구할 사항을 서류로 만들어주어서 건축주가 동의한다는 도장도 받고 하였으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버젓이 내가 살고 있는데도 그 이웃은 내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이 내 집을 넘나들면서 공사를 하였다.
다른 이웃들은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하기도 하였지만 강 건너 불구경이요 도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 중의 하나이었다. 나는 마치 구약성서의 욥이 되었고 이웃들은 모두 욥의 친구들 같았다. 나 혼자서 마음고생을 하다 보니 대한민국의 노인들의 자살율이 세계 최고라고 하는 말까지 생각이 날 정도가 되었다. 이웃만이라도 조금 인간미를 보여준다면 노인들의 자살율도 조금이라도 감소하고 독거 노인들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아예 내 땅까지 조금 양보해 달라고 한다. 마치 자기 장난감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 같다. 그래도 꽤 오랜 이웃이었는데, 서글프다.
내가 이렇게 이웃과 세상을 원망하였지만 알고 보면 그 이웃은 처음부터 변한 것이 없을 것이다. 문득 깨닫고 보니 확실하게 변한 것은 나다. 남편과 자식과 같이 살던 내가 혼자 사는 늙은이로 변한 것이다.
*『전북문학』2014-12월 - - - 270호 <散文>에서
* 박문희/ 560-851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2가 16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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