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구둔역/ 배홍배

검지 정숙자 2015. 4. 30. 02:46

 

 

     구둔역

      -추억의 가장 깊은 곳

 

      배홍배(시인)

 

 

예년보다 일찍 봄이 찾아왔다. 아파트 사잇길마다, 주택가의 좁은 길가에도 어디라 할 것 없이 만발한 개나리, 살구꽃, 앵두꽃, 벚꽃들의 향기에 현기증이 든다. 그러나 이 어여쁜 꽃들에게서 자꾸만 눈물 냄새가 나는 것은 왜일까. 매연에 그을리고 가지가 잘려나간 뭉툭한 나무들이 꽃잎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나무의 눈물인가.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다니며 꽃잎 사이 뭔가를 찾는 직박구리는 아침 내내 목이 쉬어 운다.

봄이라고 모두에게 봄은 아니다. 우리의 봄은 가난한 우리네 가계를 위로하듯 낮은 지붕 위로 오래된 가지들을 늘어뜨려 후끈 꽃송이들을 피우는 살구나무의 들큼함으로 인식되고, 봄볕에 야윈 묵은 울타리의 앏은 그늘을 다독이며 가만히 밀어올린 꽃망울을 수줍게 터트리는 앵두나무의 그윽함으로 이해되었다. 몽우리를 트는 목련꽃들이 하늘을 향해 비정하게 총을 겨누고 개나리는 담장 밖으로 가지를 내려 회색도시의 희뿌연 아침 공기 속을 뒤적인다. 누렇게 뜬 시간 속으로 구걸하듯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 있는 버드나무 아래를 지나 나의 생은 얼마나 붐비며 오늘도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살구나무와 앵두나무가 그렇게 들큼하고 그윽했던 것은 우리네 나지막한 지붕을 내려다보며 감싸던 그 높이의 우월성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살구나무보다 높지 않은 건물은 없다. 현대식 담장보다 높은 앵두나무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봄꽃나무들은 그 높이를 위해 해마다 먼저 피우려고 아우성이다.

아파트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을 향해 카메라 렌즈를 겨눈다. 아무리 이리저리 프레임을 옮겨 봐도 좋은 그림이 들어오지 않는다. 끝이 잡히지 않는 아파트의 지붕을 욕설처럼 손가락질하듯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가지를 날카롭게 뻗었다. 가지 사이사이엔 독한 꽃잎들의 향기가 흥건하다. 가슴속엔 들숨 한번에도 피었다 지는 내 유년의 꽃가지가 벋어내려 아픔인지 슬픔인지 모르는 헛웃음 같은 마른기침이 자꾸만 나오는데 발밑의 그늘은 어디까지 하얗게 제 영역을 넓혀 가는지 꽃빛 아득한 아침의 불면이 환하다.

 

   나무 아래는 적막했다

   감꽃이 떨어지는 소리, 흠칫

   등뼈 하나가 내려앉았다

 

   키 낮추어 돌아보았다, 비스듬히

 

   소리와 사람 사이

   꽃잎이 품고 있던 어슴푸레한 하늘이

   웅크리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불빛이 타고 내려오는 긴 가지가

   휘청했어도

 

   여전히 웅크렸다고 해야 하나

 

   아무것도 아니게 기우는

   먹감나무의 불임의 짐이었다고 해야 하나

   어린 감나무 잎들이 내게 자욱이 기울었어도

 

내 유년의 봄은 우리 집 앞마당에 누렇게 떨어지는 감꽃과 함께 떠나갔다. 열매도 맺지 못하고 봄내 헛꽃만 피워대던 먹감나무 아래서 까닭 없는 서글픔에 잠기곤 했다. 동구 밖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아이에겐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먹감나무가 엄마 같았다. 어느 아침 열매도 맺지 못하고 갑자기 감꽃들이 한꺼번에 떨어지고 나면 광활한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아서 몰래 울먹였다. 동네 어른들이 내가 귀여워 괜스레 놀려주는 말인 줄을 훗날 알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주워온 아이라는 말은 나의 성장기가 지나도록 우울한 나의 인간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울타리 가엔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심으셨다는 앵두나무는 어찌나 키가 컸던지 가지가 온통 지붕을 덮었다. 앵두꽃이 피면 우리 집 지붕이 밤새 환하게 끙끙 앓는 소리에 나는 한잠도 자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빨간 앵두 알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에서 내가 떨어지고 할아버지는 앵두나무를 베어버렸다. 다친 다리에선 앵두나무의 수액 같은 누런 진물이 봄내 흘렀다. 

 

   그래, 나의 앵두나무를 찾아 떠나는 거다

   추억이 아픈 상처에서 앵두꽃이 만발한 길목에

   뭄뚱이를 기우뚱 세워보는 거다

   추억이 저 노을에 숨을 때까지

   그래서 노을이 외로워질 때까지 넋 놓고 바라보는 거다

 

청량리역 12시발 중앙선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 역무원이 깃발을 들어 가리키는 곳으로 조용히 던져지는 물음, 어제도 오늘도 내일이라는 시간도 대답은 없다. 열차에겐 흐릿한 꿈의 가장자리일 뿐 레일 위에 반짝이는 어떤 슬픔 자국이 쓰라려서 지나온 시간으로 덮어주고, 지나가는 시간으로 감싸주고, 자신의 미래가 지나갈 길에 더 아프게 닳아서 환해질 때까지 눅눅한 묵언(默言)의 여정은 계속되는 것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나른하게 흘러나온다. 음악은 언제나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남한강의 고요한 수면이 아련한 시야 사이로 번져 들어와 점점이 떠있는 섬들을 적시고, 물새들의 무거운 날개를 적시고, 한번 물러나면 그만큼 빠르게 적셔오는 졸음으로 나의 자각은 시험에 들다 아질아질 허물어져간다. 평소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나는 음악을 들으면 깊은 잠에 빠지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음악에 대한 문외한은 아니다. 좋은 음반과 맘에 드는 오디오를 찾아 평생을 헤맸다. 내가 듣는 음악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 속으로 나를 데려간다. 거긴 발길 닿는 곳은 아니어서 팔딱이는 가슴은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미끄러진다. 옹색한 꿈에 바랜 그늘 같은 것에 고이는 길 끝까지 따라가다가 레코드의 마지막 골에 턴테이블의 바늘이 걸리면 번쩍 깨어 돌아오곤 한다.

기차가 부르르 잠시 요동을 치고 나는 잠에서 깼다. 철길이 양평을 지나 산속으로 접어들고 있다. 여기서부턴 본격적인 산길 달리기가 시작된다. 창 밖 어디를 보아도 길 하나 보이지 않는다. 경기도의 오지에 들어선 것이다. 이어폰을 귀에서 떼어내고 봄 산을 바라본다. 황사가 자욱해서 높지 않은 산봉우리들도 아득히 멀다. 이처럼 황사가 날리는 날이면 바위틈 응달에 홀로  피어있는 한 송이 진달래에도 아롱아롱 온 산이 젖어 내려 눈물의 길인지 모래바람의 길인지 모르는 내 추억의 가장 깊은 골짜기를 발바닥이 두꺼운 한 소녀가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 소녀를 처음 만난 것은 이십여 년 전 이곳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때였다. 학생 중에 유난히 눈이 크고 뭔가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는 아이가 있었다. 부모 없이 버려진 아이를 혼자 사는 노인이 데려다 키운다고 했다. 소녀는 그 노인을 엄마라고 믿고 있었지만 자라면서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이야기에 자신의 태생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 역시 그 아이에게 각별히 대했다. 적어도 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진 그랬다. 소녀가 가엾어 자청해 2년 연속 담임을 하던 어느 해 봄날 아침 소녀는 내게 빨간 앵두가 주렁주렁 달린 커다란 가지를 꺾어왔다. 가지가 어찌나 컸던지 나무 하나를 송두리째 뽑아온 것 같았다. 엄마가 선생님께 갖다 주라 했다고 했다. 그날 오후 아이들이 돌아간 직후까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이내 한 사내의 억센 손아귀에 움켜잡힌 채 내 앞에 끌려온 그 아이의 파르르 떨던 목덜미가 내가 본 그 소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몇몇 산골 아이들이 가져온 봄 열매들을 아이들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깨물어 먹던 일이 그 아이에게 이웃집 어린 앵두나무를 송두리째 꺾어오게 했던 것이다. 그때 아이를 떨게 했던 것은 앵두나무 주인의 무서운 손아귀가 아니었다. 화가 난 그가 불쑥 내뱉은 '주워온 아이'라는 말 한마디였다. 그 사건 이후 아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날로 아이는 집을 나간 것이다. 열차로 읍내 장에 갔다 오는 사람들이 구둔역에서 아이를 보았다거나, 양평 읍내에서 보았다는 풍문이 있었을 뿐, 이듬해 내가 부천으로 학교를 옮기기 전까지 아이를 찾지 못했다.

구둔역은 내 추억의 가장 깊숙한 곳 중 하나다. 커다란 눈이 슬픈 그 아이를 찾아 그해 늦봄부터 주말이면 중앙선 기차를 타고 구둔역에서 내려 서성였다. 그때 듣는 모든 음악은 아까시아꽃 그늘진 철길을 적셨다. 그 길로 소녀를 향해 띄워 보낸 수취인 불명의 편지가 그리움에 함빡 젖어 돌아온 어느 날 아침 아까시아꽃도 한꺼번에 떠나갔다. 꽃이 떠난 자리엔 푸르름이 조금씩 자라 밤이면 귀 밑에서 싱싱하게 철썩였다.

그 아랜 남한강의 은빛 모래밭이 펼쳐지곤 했다. 모래 위를 다녀가는 달과 별들의 푸른빛을 타고 그녀의 맑은 눈빛에 이르고자 했으나 조약돌만 만지작거리며 이리저리 구르다 잔물결로만 머물고 아이는 언제나 수평선보다 멀리 달아나 있었다. 나는 조바심을 한 높이씩 쌓아가며 수평선 위로 오르길 원했으나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수많은 물거품과 부러진 햇빛들이 한데 엉키고 뒤섞여 커다란 물결을 이루어 가로막고 있었다. 감기에 걸린 아이처럼 나는 칭얼거리며 굽이쳐 돌아가는 물 언덕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열차가 구둔역에 정차했다. 1940년에 개업하여 이 지역에선 유일하게 6.25의 피해를 입지 않고 오늘까지 그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이 역은 등록문화재 제 296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일신리, 이곳이 구둔이란 지명을 얻게 된 연유는 이렇다. 임진왜란 때 문경새재를 넘어 남한강 수로를 따라 한양으로 접근하는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아홉 개의 진지를 구축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의 지제면이라는 지명도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것이라니 이곳은 일본과 무슨 인연이 있는가보다.

그때 아이를 찾아 이 역에서 내려 마을 쪽으로 조금 가면 어느 농가 울타리 밖으로 커다란 앵두나무 가지가 벋어있었다. 나는 나무 아래서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보내는 일에 대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앵두나무가 제 단단한 속만큼이나 견고하게 내 생각을 뒷받침 해주는 듯 연약한 잎들을 내밀어 뺨을 어루만져주면 내 눈 안은 눈물 고이듯 작고 단단한 열매들로 그렁거렸다.

이따금 완행열차가 지나가며 울리는 기적은 참으로 서글펐다. 기적 소리 안엔 내가 들어야 할 말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이 어느 것이 먼저이고 다음인지 하나하나 헤아려볼 양이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는 듯 나무에 앉아 울어대는 작은 새의 울음에 나의 목젖은 시큰하도록 젖었다.

어쩌다 바람이라도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면 잎사귀들은 깜짝 놀라 뺨에 드리우고 있던 나직한 생각들을 황급히 데려갔다. 새는 날아가고 허공엔 새의 씁쓸한 울음이 떠 있었다. 한모금씩 뱉어내는 일그러진 담배연기 속에 으스스 달은 떴어도, 머리 끝 환하도록 바라보아도, 그 아이 두리번거리던 커다란 눈동자 그대로의 그리움으로 촉촉하게 젖은 서툰 보름달이었다.

 인적이 끊긴 역사(驛舍)엔 어스름이 어린 나무들 아래서 옹기종기 놀다 돌아간 후 사방의 고요가 다른 고요들을 불러와 몸을 포개어 적막을 쌓는다. 스르르 내 손바닥 안으로 흐르는 가로등 불빛을 한 움큼 주머니 속에 움켜쥐고 빈 승강장을 걷는다. 어린 잎사귀들은 내가 빛 한 움큼 숨기는 발자국을 떼었을 뿐인데 낮에 보았던 일들을 이야기 하는지 서로 이마를 맞대고 수군거리다 몸을 비벼대며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듯 상큼한 속살을 비쳐 보인다. 후끈 달아오르는 한쪽 뺨을 어루만지는 손바닥부터 나의 몸뚱이는 어두워져간다. 

  

   해가 진 서쪽 하늘에

   왜가리 간다

  

   어둠을 삼키며 나는 새

 

   꺼억꺼억-

   초승달을 토해내고

   울음을 앞세워 간다.

   새의 목청 안에 울창한 달빛 가지

 

   울음의 마디 하나가 더 자라

   허공중을 걸어 둘

   뼈의 속이 비었을 뿐인데

   새는 어디까지 가는지

 

   가야 하는지

 

   누구네 가계의 쓸쓸한 내력을

   저 허공에 써서 걸어야

   뼛속이 꽉 차서 새는

 

   날개를 접을 것인지

 

   갓 피어난 감꽃이

   맑은 눈을 슴벅이는 저녁

 

눈뭃 아롱아롱 마을의 불빛들이 머리카락 위로 송송 앵두처럼 맺힌다. 몸뚱이는 앵두나무가 된다. 몸속에 흐르는 붉은 피는 부질없는 서글픔으로 불쑥불쑥 앵두 알들을 내밀고 다시금 그때의 앵두를 기억하는 일이 하도 서러워 몸뚱이는 멀리 마을의 불빛 속으로 번져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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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문집 『풍경과 간이역』에서/ 2015. 4. 11. <신아출판사> 펴냄

  * 배홍배/ 2000년『현대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