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2015 - 1월호>
복(福) 도깨비가 그립다
신범순
나는 어릴 때 도깨비 이야기 때문에 밤중에 어두운 곳에 혼자 가는 것을 무서워했다. 그런데 나의 아버님은 나와 정반대였다. 그분은 항상 곧으신 성품 그대로 도깨비나 귀신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한번은 아버님이 정말 그러한 도깨비나 귀신이 있는지 알아보려 횃불을 들고 시골 산을 온통 헤매고 다닌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도깨비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옛날 시골에선 멍석을 깔아놓고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시작되던 흥미진진한 이야기 중 하나가 도깨비 이야기였다. 그 가운데 단골 메뉴는 씨름하는 도깨비, 내기하는 도깨비, 복(福)을 주거나 또는 반대로 화(禍)를 주는 도깨비 방망이 이야기였다. 나는 우리의 이 도깨비 이야기를 가장 맛있는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다.
마을 사랑방이나 여름밤 돗자리 위에서 펼쳐진 도깨비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무서운,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신이한 능력을 갖춘 무시무시한 도깨비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도깨비는 때로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어리숙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셈을 잘 못하거나 기억을 못하거나, 판단을 잘 못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내기와 경쟁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대개 이 경쟁에서 이긴다. 그 결과 도깨비와 만난 사람들은 이 도깨비와의 내기와 경쟁에서 이긴 대가로 큰 재물과 복을 받는다. 어떻게 보면 도깨비는 평범한 사람의 삶에 끼어들어, 경쟁을 통해 이들의 능력을 시험하거나 능력을 부추기고, 그러한 경쟁적 삶의 성과를 가져오도록 유도하는 존재이다. 도깨비는 결국 평범한 사람을 일깨우고 부추기어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도록 해주는 조력자이다.
인간의 삶에 개입한 정령
나는 도깨비 박사는 아니지만 여러 문헌에 나오는 도깨비 이야기를 모아 보면서 그것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정령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도깨비는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꾸준히 관찰하다가 그 사람의 운명에 개입한다. 그 사람은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고 대개 효심이 깊다. 그의 가난과 불행은 어떤 도깨비와의 만남을 통해 반대로 전환된다. 그 만남을 통해 그 사람은 부자가 된다. 도깨비 방망이 이야기는 대체로 이러한 스토리 구조를 갖는다.
우리 선조들은 왜 이러한 도깨비 이야기를 남긴 것일까? 혹시 한 시대의 공포에 짓눌린 평범한 사람들 각자에게 알맞은 해결책을 그러한 이야기 속에 담아놓은 것은 아닐까?
춥고 가난했던 식민지 시대의 냉혹한 바람 속에서 천재 시인으로 유명한 이상(李箱)도 도깨비 이야기를 하나 남겼다. <황소와 도깨비>라는 동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 역시 식민지인의 한 사람으로 공포의 시대를 살았다. 이 작품에서 그는 공포 대신 매우 따뜻한 정과 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상은 소를 키우는 돌쇠라는 시골 마을의 젊은 무지랭이 사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돌쇠는 길을 가다 우연히 산오뚜기(도깨비)를 만난다. 귀가 오뚝 솟고 꼬리가 달린 이 도깨비는 개한테 물려 꼬리가 반동강 난 상태였다. 산속에 숨어 있다가 소를 몰고 가는 돌쇠 앞에 나타나 자신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돌쇠는 그 애원을 받아준다. 도깨비는 소의 배 속에 두 달간 들어가서 쉬며 자신을 치료하고, 그 보답으로 돌쇠의 소를 백 마력의 힘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다. 물론 돌쇠는 그 이후도 부지런하게 일했으며 백 마력의 소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 이상은 작품 끝에 돌쇠의 중얼거림을 덧붙였다. "도깨비가 아니라 귀신이라도 불쌍하거든 살려주어야 하는 법이야."
이상의 동화는 공포의 시대를 건너가는 하나의 방식을 말해준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남을 도울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어려움 때문에 남의 어려운 사정을 못 본 척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무지한 돌쇠의 마음에는 그러한 헤아림과 정이 있었다. 그는 다친 도깨비를 돕는 조력자가 되었다. 이 도깨비는 돌쇠를 돕기 위해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도깨비는 돌쇠의 전 재산인 소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을 일을 요청하고 그것으로 돌쇠를 시험했다. 돌쇠는 이 도깨비의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물론 돌쇠는 그것을 시험으로 의식하지 않고 도깨비를 도왔다.
우리 주변에 전승된 많은 도깨비 이야기는 이러한 식이다. 복을 가져다주는 도깨비가 있지만 일부러 도깨비의 시험을 의식적으로 통과하려는 자는 오히려 도깨비에게 화를 당한다. 혹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이는 이야기가 그러한 것들이다.
이러한 도꺠비 이야기가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복을 주는 도깨비 이야기는 정(情)에 기초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 사이의 만남에 이러한 정이 메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깨비도 사라졌다. 이제는 인간에게 복을 주려해도 인간에게 갈 수 없다. 인간이 더 이상 도깨비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사막에 도깨비가 잇들 수 없는 것이다. 옛 선조들의 무섭지만 구수했던 도꺠비 이야기가 그립다.
*『샘터』2015-1월호 <샘터 에세이>
* 신범순/ 한산모시로 유명한 충남 서천에서 출생해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쓰기의 최저낙원』등의 평론집이 있으며 천재 시인 이상에 대한 연구서가 있다. 이상 학회를 결성할 예정이다. 『노래의 상상계』에서는 고대시가에서 김소월에 이르는 '산유화' 모티프의 의미를 풀어냈다. 한국거석문명과 암각화 연구를 위해 답사와 강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포항시립미술관에서 '한국거석문명의 수수께끼' 전시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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