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깨진 그릇/ 임상기

검지 정숙자 2015. 12. 12. 20:50

 

     깨진 그릇

 

    임상기

 

 

  스님이 이가 빠진 찻잔을 내놓는다.

  다탁에는 이가 빠진 찻잔 몇 개가 더 남아 있다. 이가 빠진 찻잔을 버리지 않고 사용하는 중이니 거부감을 느끼지 말라는 메시지 같다. 찻잔의 실금에도 찻물이 스며들어 그물을 친 것처럼 보인다.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찻잔이 아닌 물때가 낀 듯 차의 찌꺼기가 실금 사이에 끼어 있다. 찻물이 만들어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이다. 차를 마시기 전부터 생각이 많아진다. 차를 마시기 전에 격식을 따지는 번잡한 생각을 내려놓으라는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조주 스님을 생각하며 쉬엄쉬엄 차나 마시라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음식점에서 이가 빠진 컵을 가져오면 거의 대부분 바꿔달라고 한다. 깨져서 금이 간 컵이 갑자기 깨지면 다칠 위험도 있지만 깨진 그릇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화적인 배경이 있다. 평소 집에서 깨진 그릇을 사용하지 않기도 하지만 깨진 그릇에 관한 터부가 내가 깨거나 다른 사람이 깬 그릇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릇이 깨어지면 완전한 것이 깨져 쓸모없는 것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재수없다 불길하다 · 복 달아난다 · 복 나간다 등의 부정적인 감정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술자리에서 그릇이나 술병이 깨지면 길조로 여긴다고 한다.

  진품명품을 보다 보면 수리한 흔적이 있는 도자기가 나온다.

  수리한 흔적이 보통 사람들은 알아차릴 수 없게 감쪽같지만 수리했다는 사실만으로 현저하게 가격 차이가 난다. 물론 완전한 형태를 갖추는 것이 가격 결정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수리한 흔적이 있는 있는 도자기는 은전을 베푸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수리한 도자기 중에 형태가 아름답거나 문양이 독특한 작품은 제법 높은 가격이 매겨지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일 따름이다. 우리나라는 수리한 도자기나 깨진 그릇에 관대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일본의 다기는 수리한 작품이 많다고 한다.

  도자기를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귀한 다기가 깨지면 버리지 않고 수리하여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계기로 삼았다. 깨진 부분은 금가루나 은가루를 사용하여 수리한 자국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이렇게 수리한 자기는 더 비싸게 거래되기도 한다. 물론 누가 언제 사용하던 것이고 사용하던 사람이 겪은 역사적인 사건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생긴다. 그렇지만 고쳐야 할 만큼 가치가 있고 깨진 그릇이지만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복원했다면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새롭게 재탄생한 작품으로 본다. 수리한 도자기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것이고 수리를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갖는다.

  원래 모습이 보여주는 완전한 백치미와 사용하면서 깨질 수밖에 없는 운명의 간극이 가치의 상승을 가져온다. 깨진 다음 수리한 작품은 완전했던 허영의 흔적과 비극적인 절망이 응축되어 있다. 허영과 비극이 같이 어우러진 새로운 모습이다.

  박물관 전시실에는 토기 유물이 많다. 토기는 부장품이거나 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깨진 조각을 퍼즐 맞추는 것처럼 맞춰가며 형태를 잡고 조각을 찾지 못한 부분은 빈 공간으로 남겨두거나 다른 색깔로 만들어 수리한 흔적을 남겨둔다.

  항아리에 철사로 테를 매어 쓴다.

  금이 갔지만 간장이나 된장 등 물기가 있는 것을 담지 않으면 사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깨진 것을 버릴 것인지 깨진 대로 쓸 것인지는 쓰는 사람에 달려 있다. 조금은 더 쓸 요량으로 때워서 쓰기도 하지만 완벽함에 비하면 눈에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다. 깨진 것에 어떤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넉넉한 사람이라면 깨진 순간을 수용하고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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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집『무지개 뜨는 풍경』에서/ 2015.11.25. <도서출판 Book Manager >에서

  * 임상기/ 전북 김제 출생, 2002년『문예연구』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