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편수에 소홀하면/ 정태범

검지 정숙자 2015. 4. 28. 23:54

 

     편수에 소홀하면

 

      정태범

 

 

편수란 학교교육에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인데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총칭하는 말이다. 학생들이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를 문서화한 일종의 지침서이다.

어떤 교과에도 배워야 할 내용들이 많다. 배워야 할 내용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것을 정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교육과정의 지침에 따라 각 교과에서는 배워야 할 내용을

결정한다. 학교교육은 바로 이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 의하여

지역의 교육과정이 개발되며, 학생들은 이들 교육과정에 의하여

성장 발달한다.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담은

지침서이다. 교육의 목적과 내용을 담은 아주 중요한 문서이다.

어느 나라도 교육과정을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육정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육 내용이다.

어느 정책도 그 내용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총칭하여 편수의 소홀은 교육의 목적과 내용의 소홀로 이어져

국적 없는 교육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학교교육에서 어떤 사람을 기를 것인가 하는 것은 바로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결정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떤가?

우선 편수는 교육정책의 중심에 있지도 않다. 정책의 변두리에도

끼이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 교육현장은 상당한 혼란에 있다.

해방 이후 최대 혼란기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학교가 기초교육을 적당히 하여 경제 사회에 내놓으면 자기대로

살아갈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 땅에서 제대로 된 정신을 갖고 문화를 가꾸며 어울려 사는

사람을 기르려면 교육과정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학습

자료인 교과서가 그것을 뒷받침해야 한다. 교육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어떤 사람을 기를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교육정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교육과정은 지금 방치

상태에 있다. 정신이 바로 된 사람이라야 돈을 벌어 인간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돈의 논리로는 인간의 도리를 넘어설 수 없다.

사람의 도리가 있고 경제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의

논리가 앞서야 경제의 논리가 순리대로 풀어질 것이다.

편수의 소홀은 바로 교육의 소홀로 연결된다. 지금 사람의 도리를

개탄하는 사람이 많다.

교육에서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현상이다. 편수는 바로 이를

다룬다. 편수가 교육정책의 중심에 서야 한다. 일본 문무성에서

이를 다루는 사람은 60여 명이나 된다.교육과학부에서 이를

다루는 사람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문제는 교육을 다루는 교육과학부에서도 편수를 소홀히 한다는

게 사실이다. 교육행정을 다루는 일반 직원은 이러한 점에 대해

관심도 없다. 국정지표로 다루어야 할 정책 과제는 경제의

효율성을 앞세운 나머지 궤도를 벗어나 있다.

참으로 국가의 미래가 걱정된다. (2012.4.3.)

                                                 

 --------------------

* 수상집『손을 흔들어 이별을 슬퍼하다.』에서/  2015.4.10. 홍영사 펴냄. 

*  정태범(1936-2015)/ 경남 산청군 삼장면 덕교리 서당골에서 태어남.

      호 : 지경(之卿), 법명은 무행(無行).

      진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과 동대학원 졸업.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교육정책을 전공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음.

      교육부 편수국장 역임, 한국교원대학 제1호 교수로 취임.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부장과 대학원원장 역임.

      저서- 교육정책, 교육행정, 교원교육, 장학론 등의 교육관련 전문서 12권을 비롯하여

      북은 힘으로 치지 않는다』『내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등의 수필집을 펴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