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합평회/ 오은

검지 정숙자 2015. 5. 30. 16:43

 

 

     합평회

 

      오은

 

 

  좋은 말만 하기 없기

  나쁜 말을 꼭 한 번씩은 하기

 

  자 누구부터 할까?

 

  손바닥을 내밀고

  선생님의 매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먼저 맞는 매는 매서웠다

 

  이 구절 어디서 본 것 같아

  맞아, 그 시인의 그 시집에 있는 그 시의 두 번째 연이랑 유사해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그 누구와 그 무엇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맹해 보이는 아이조차

  겉옷의 안주머니에

  잘 드는 족집게나 면도칼, 송곳 하나씩은 품고 있었다

 

  기교만 있지 새로움은 없어

  정작 네 이야기가 없잖아

  진정성이 안 느껴져

 

  오늘 함께 점심을 먹고 간식을 먹고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연애에

대해 떠들던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

 

  새겨들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야

 

  언제부턴가 자기 작품은 가져오지도 않는 선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얼마나 들었는지 잔뜩 뚱뚱해진 선배

 

  맞는 자는

  더 매서워진다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야멸차져야 한다

 

  이제부터는 육탄전이다

 

  겨울인데도

  교실에 난방이 안 되는데도

  족집게나 면도칼, 송곳이 삐져나올지 모르는데도

  얼굴이 벌게진 아이들이 겉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 누구와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좋은 말은 하기 없기

  나쁜 말만 꼭 골라서 하기

 

  법대로 하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다 이러면서 크는 거야

  더 할 말 있는 사람?

 

  인용되지 못한 마음만 교실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 『미네르바』2015-여름호 <신작시>에서

  *  오은/ 2002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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