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회
오은
좋은 말만 하기 없기
나쁜 말을 꼭 한 번씩은 하기
자 누구부터 할까?
손바닥을 내밀고
선생님의 매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먼저 맞는 매는 매서웠다
이 구절 어디서 본 것 같아
맞아, 그 시인의 그 시집에 있는 그 시의 두 번째 연이랑 유사해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그 누구와 그 무엇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맹해 보이는 아이조차
겉옷의 안주머니에
잘 드는 족집게나 면도칼, 송곳 하나씩은 품고 있었다
기교만 있지 새로움은 없어
정작 네 이야기가 없잖아
진정성이 안 느껴져
오늘 함께 점심을 먹고 간식을 먹고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연애에
대해 떠들던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
새겨들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야
언제부턴가 자기 작품은 가져오지도 않는 선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얼마나 들었는지 잔뜩 뚱뚱해진 선배
맞는 자는
더 매서워진다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야멸차져야 한다
이제부터는 육탄전이다
겨울인데도
교실에 난방이 안 되는데도
족집게나 면도칼, 송곳이 삐져나올지 모르는데도
얼굴이 벌게진 아이들이 겉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 누구와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좋은 말은 하기 없기
나쁜 말만 꼭 골라서 하기
법대로 하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다 이러면서 크는 거야
더 할 말 있는 사람?
인용되지 못한 마음만 교실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 『미네르바』2015-여름호 <신작시>에서
* 오은/ 2002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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