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랑그의 강/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4. 12. 13. 15:10

   

    랑그의 강

 

    정숙자

 

 

  이제 나는 그가 된다. 그가 열다 만 골목, 그가 띄우다 만 달빛, 그가 젓다 만 물살··· 먼 데까지··· 식물들이 습득한 일념을 빌려 쓰고자 한다.

 

  알 수 없지만

  장차 내가 되고자 하는 그가

  어떤 초상일지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머나먼 강둑에서 만나게 될, 그를

  침묵과 함께 출발시키려 한다

 

  나란히 날아가는 두 마리의 잠자리. 이 둘은 멈추어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구름이 바람이 구름이 바람이 뒤로 밀릴 뿐. 이 둘은 서로 놓치지

도 달아나지도 않는다. 동시에 생각하고 동시에 바라보며 현재를 현상을 놓아 보낸다.

 

  예사로운 하늘만이 예스러운

 

  내가 아직 흙이었을 때

 

  뿔뿔이 벋은 길들은 강들은 저절로 가지 쳤을까. 헤쳐모인 돌들은 꽃들은 저절로 둥글었을까. 낭떠러지와 별 따위도 저절로 그리 깊어졌을까.

그 모두 누군가 비우려던 (덜 태운) 절규는 아니었을까.

 

  떠난 자는 슬픔뿐! 슬플 뿐!

  이제 나는 그가 된다

  날아가는 한 마리의 잠자리를 두 마리라 해도 두 마리의 잠자리를 한 마리라 해도 틀리지 않다

  나는 비로소 입체적이다

  탑재된 눈물 밖 삼인칭과 일인칭 사이

  너무나도 조용한 밑변 위에서

    - 『시작』2014-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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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공검 & 굴원』(3부/ p. 86-87)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