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휨 현상/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5. 12. 3. 00:55

 

    휨 현상

    - 미망인

 

    정숙자

 

 

  침대에서 일으킨 발자국

  거실로 이어진 아침

  가로 놓인 테이블, 찻주전자, 펜랙(penrack)···

  한 치도 변한 게 없다

 

  쓰다 만 노트, 리모컨, 시계···

  무엇 하나 건드리지 않고 지나갔다

  시간은, 다만, 밤사이

 

  아침은 항상 그만큼의 선도로 새하얗다

  어떤 아침을 막론하고

  간밤에 펼쳐놓은 종이 한 장

  그대로,

 

  누군가 터치하기 전에는

  어느 외계에서 덩굴손 뻗쳐오기 전에는

  유리창의 순수 앞지르기 전에는

  절대 신뢰의 백지 한 장

 

  그런데 그 종이가 북   찢어져 있는 걸

  멀쩡한 의식으로 본 적이 있다

  쓰다만 원고, 의자, 실내화, 세절기···

  모두 젖어 있었다

 

  심지어 튼튼한 책상의 무르팍까지

  아니, 그 다리 밑으로

  종이 한 장이 두 쪽이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내려가고 있었다

    - 『예술가』 2015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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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공검 & 굴원』(3부/ p. 80-81)에서/ 2022. 5. 16. <미네르바> 펴냄

  * 정숙자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 『행복음자리표』외